이 리뷰는 의뢰를 받아서 작성하였습니다.
작가분께서는 완결이 아니므로 리뷰보다는 소감을 적어 달라고 부탁하셨는데요, 작품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 소감을 제대로 적어낼 수 있을까?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했고 어떤 식으로 생각을 꺼내서 정리해야 할지도 여러 번 고치고는 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담백하게 감상을 적어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리뷰에 가까운 문장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읽은 이의 소감으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당연히 스포일러를 다량 포함할 예정입니다. 혹시 소설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지금 한 번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 소설은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미지의 총합에 가깝습니다. 제목은 ‘라의 조각들’이고 소개문에는 ‘네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하나’ 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 ‘Innocence’와 ‘Luckiest’가 나와 있으므로, 이러한 방식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지요.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엮일 것이라는 것도요.
아쉽게도 그것이 제가 이 소설에서 그나마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크게 말하자면, 현실과 환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환상이라 하여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공상 속의 존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다루는 사건을 분류했을 때 한 쪽은 현실적이고, 한 쪽은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인 Innocence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약혼녀를 죽인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그 과정에서 흥신소에 의뢰하여 사람을 찾는 현실적인 일도 하지만, 동시에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존재를 만나 현실적이지 않은 일들을 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 간극이 아주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독자는 금방 혼란에 빠집니다. 이는 소설의 표현에서도 많이 드러나게 됩니다. Innocence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점 하나는 고유명사가 그렇게 많지 않으면서도 사실은 고유명사임을 깨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Innocence에서 주인공은 호텔, 시계, 카드, 펜, 계약, 관념 같은 것을 다루고 만나게 됩니다. 분명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만, 그 의미대로 쓰이고 있지는 않지요. 그리고 독자는 금방 래빗, 이노센스, 히사 같은 알 수 없는 고유명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결과,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게 됩니다.
만약 라의 조각들이 제가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그리고 소개글에 적힌 것처럼 네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진 것이 맞다면, Innocence는 처음을 장식하기에 그다지 적합한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Innocence를 읽고 느낀 것은 궁금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감정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이 드러났으나 설명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만약 모든 이야기가 밝혀지고 나서 이 궁금증이 해소된다면, 꽤 대단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것 같네요.
궁금증을 안고 이어서 읽게 된 Luckiest는 보다 좋았습니다. 이 이야기도 동일하게 현실과 환상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이전 이야기보다는 매끄럽게 이어지는 편입니다. 다만 그것은 이번 이야기에서 환상의 비중이 크게 줄었고, 현실과 환상 사이의 관계가 밀접하게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이야기를 전개할 때에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전개 형태가 꽤 강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생각 등을 마치 독자가 느끼는 것처럼 읽어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이 부분의 현실과 환상을 떼어 놓고 보자면, 현실 파트의 전개 부분이 그렇게 충분히 길지는 않습니다. 길게 일어난 사건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결국, 짧은 현실 속에서 어떠한 환상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나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현실은 현실대로 일어나지만, 그것이 환상의 부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이 이 소설 전체에, 혹은 Innocence에서 궁금했던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명확히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야기는 독자에게 감상을 남깁니다. 그것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주요한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특정 장면을 찍은 사진은 그 사진 내에 존재하는 것만 보여줄 수 있지만, 사진을 모아 영상으로 만들게 되면 사진에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요소도 ‘보여줄’ 수 있게 됩니다. 영화의 미장센 같은 것을 예시로 들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소설은 어떻게 보면 묘사와 대화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묘사와 대화가 모여서, 단순히 적힌 것 이상의 감상을 독자에게 주게 되지요. 그렇기에 소설은 단순한 묘사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묘사와 설정, 대화, 전개 등은 몇몇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이야기로 저에게 다가왔는지는 약간 의문이 듭니다. 제가 보는 눈, 혹은 읽는 눈이 없어서 그렇게 읽은 것이기를 바라면서, 나머지 ‘라의 조각들’을 읽고 그 모든 이미지들이 하나로 합쳐서 저에게 다시 감상으로 다가오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