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운명으로부터 시작해 장례가 이루어지는 과정 속 ‘나’의 세계가 완성된다. 택시기사가 그랬듯, 우리는 제목을 통해 이미 종착지를 알고 있다.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매순간 저쪽 세계로 넘어가기를 원하며 삶의 의지를 상실한 채 무의식 속 또다른 주인을 따른다. 초반 운명 편에서는 회색으로 채워진 ‘나’의 독백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를 둘러싼 공기의 답답함을 온몸으로 와닿게 한다. 전개의 루즈함을 느낄 법하지만, 운명을 벗어나면 두 세계를 연결할 경유지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나’가 만들어낸 환상의 덧칠이라 생각했으나 실재했고, 그곳에는 ‘꼬리’가 있었다.
이곳에는 두 명의 노인이 등장한다.
한 명은 ‘꼬리’. 상황적 묘사와 이후 ‘나’가 자신의 이름을 ‘고리’라 칭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꼬리와 나는 복층에서부터 등장한 올가미를 이루는 요소다. ‘나’는 자신을 이루던 세계에서 도망쳐나왔음에도 이쪽 세계를 스스로 떠날 수 없었기에 올가미를 계속 타인에게서 찾았지만, 결국 갈구의 끝은 자신이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여자에게 올가미의 역할을 부여한 ‘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 채 과거를 직면한다. 이후 그를 괴롭히던 통증은 사라졌고, 또다른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통증은 지금껏 외면해온 과거의 후유증이었으리라.
어르신이라 불리는 노인은 경유지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자 살인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혼란의 주범이자 ‘나’를 투영하는 존재다. ‘나’가 하지 못한 것을 해낸 사람. 한번의 포옹보다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위안이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나날들이었다.
옭아맨 ‘나’의 생명이 또다른 세계에서는 더이상 회색으로 물들지 않길.
나는 어느 곳도 택하지 못하는 인형이자, 성충이 되지 못한 한 마리의 번데기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눈꺼풀이 상황을 미루고자 막을 내린다. 반복하는 수면으로의 도피였다. 이번 수면은 매일의 잠처럼 짧지 않길 바란다. 부디 나의 여생이 평온한 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