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시간의 데자뷰 공모(비평)

대상작품: (소등 모음집) –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작가: 매도쿠라,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7월, 조회 41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SF드라마는 영국의 ‘닥터후’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다니는 외계인 ‘닥터’의 모험을 그리는 드라마인데,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봤으니 상당히 오래되긴 했다.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다니는 까닭에 (그리고 작가진이 꽤 머리가 좋은지) 타임라인을 꼬아서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덕분에 나는 소설 속에서 시간을 꼬아놓으려면 반드시 ‘시간을 풀어놓기 위한 장치’가 수반되어야 함을 알았다. (아, 여기서부터 스포입니다. 헤헿)

본 작품에서 꼬인 시간을 풀어놓기 위한 장치는 ‘생쥐의 수명’과 ‘낯설지만 친근한 할아버지’이다. 생쥐의 수명은 작품 전체에 걸쳐서 꾸준하게 언급된다. 과거로 돌아갈 수록 수명이 줄어든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작품 내에서 왜 생주의 수명이 줄어드는 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생쥐의 수명이 줄어드는 매커니즘 같은 걸 설명하지도 않는다. 필요없는 걸 굳이 설명하려 드는 친구들이 이 글을 읽어봤으면 싶다.

그렇지만 ‘낯설지만 친근한 할아버지’는 어떨까. 금수인 생쥐보다도 비중이 낮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위치는 생쥐보다도 핵심적이다. 그러나 작중 할아버지는 등장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듯한 언급 속에서만 잠깐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위치도 애석하다.

결말을 이렇게 낼 거였다면, 이런 결말로 끝을 내겠다 처음부터 결심하고 시작한 글이었다면 할아버지의 분량이 이정도여서는 안 된다. 분량도 늘리고 비중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작품은 일지의 형식과 대화 회상의 형식을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 데, 그것도 좀 아쉽다. 형식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러한 형식을 좀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 있지 않았을 까 싶다. 레이아웃이랄까, 하여간 혼란스러운 것이다. 형식을 벗어나서 분량이 좀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진행된 것은 아닐까? 공백 포함 1만 자 안팎에서 깔끔하게 해소할 수 있는 글감은 아니었지 싶다. 쓸데없이 묘사를 늘리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할아버지의 분량을 조금 더 확실하고 본격적으로 작품에 투입해야 할 거 같다. 언급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따로 장면을 배정하여 주인공의 시선으로 재구성해보는 여자친구와 할아버지의 만남, 같은 거!

글감은 흥미로웠는데, 결말이 여러모로 아쉽다. 결말 자체가 아쉽다기보다는 결말을 빛나게 해주지 못한 전개가 아쉽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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