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몽팀 김 대리의 파견 보고서>와 <길몽팀 김 대리의 업무협조 보고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길몽팀과 흉몽팀, 강력사건 수사팀이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 바깥에 위치한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우리들과 확연히 다른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들이 꾸는 꿈을 만들고, 신이 인간에게 주는 복지혜택에 관여하며, 인간들의 세상에 오기 위해 몸을 변환시켜야 한다. 그런 그들이 모종의 이유로 인간 세상에 뛰어드는 과정을, 나는 읽기의 한 과정으로 읽었다. 김 대리의 보고서는 행복과 꿈에 관한 이야기이며, 읽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파견 보고서에서는 질문이 제기되고 이로부터 사건이 시작되는 양상이 반복된다. 먼저, 길몽팀 브리핑 이후 제시된 이사장의 질문을 보자. “파견팀을 보내면 실적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길몽 실적은 4년째 최저를 기록하고 있으며, 누구도 명확한 이유나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에 이사장은 직접적으로 꿈 제작에 관여할 수 없다면 간접적으로 꿈을 꾼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 묻는다. ‘은밀하고 간접적으로’ 사람들을 도울 파견팀이 꾸려지고, 김 대리도 여기에 포함된다.
다음은 사건의 중심이었던 길몽팀 김 대리의 질문이다. “나상현 씨가 복권을 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상현 씨는 2년째 길몽 복지혜택을 수령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니, 김 대리가 직접 복권을 사다 줄 수도 없다. 김 대리와 인턴은 나상현 씨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수단을 강구한다.
그러나 김 대리가 정말로 물었어야 하는 건 이것이다. “왜 나상현 씨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가?”
나상현 씨는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 그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복권이 아닌 계기였다. 집 밖으로 나올 계기, 상실을 딛고 다시 일어설 계기. 그런 그에게 복권이니 길몽이니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꿈이 길몽이었다고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복지혜택을 수령하지 않는다, 나상현 씨가 복권을 사지 않는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을 김 대리가 발견할 때 사건은 비로소 해결된다. 사건이 아닌 인물에 주목할 때, 그들의 서사를 발견할 때 의미가 발생한다.
기껏 집 밖으로 끌어낸 나상현 씨를 트럭이 들이받았을 때, 김 대리는 그의 행동이 완전히 무의미했으며 오히려 한 사람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생각에 좌절한다. 그러나 직장 동료들이 전해준 소식은 전혀 다른 깨달음을 준다. 김 대리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 간과했던 사실들을 깨닫고, 그 사실에 비추어 기존의 사건을 재조명하며 김 대리는 텍스트의 해석을 바로잡았다.
한편, 김 대리가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한 것이 온전히 그의 책임만은 아니다. 이사장의 질문은 김 대리의 행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상도 못한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되어, 빠르고 확실하게 일을 해결하는 것만이 목표가 된 김 대리는 한 가지 질문에 천착한다. 더 넓은 시각을 가지지 못했던 데에는 이사장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잘못 던진 질문도 완전히 무용하지는 않았다. 집 밖으로 나오게만 한다면 나상현 씨가 복권을 사리라 생각했고, 긴급 주문 건으로 나상현 씨의 택배 배달이 지연되게 만들었다. 이것이 실제로 복권 구매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나 나상현 씨를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며, 나상현 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질 계기를 만들었다. 김 대리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김 대리의 행동과 그 행동에 따른 결과는 두 개의 층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글 속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우연과 의도는 엇갈리거나 맞물리며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한다. 김 대리라는 이야기 속 인물의 행동은 뒤이어 발생한 우연의 계기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둘째, 글을 읽는 독자는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읽는다. 사람들이 왜 복지혜택을 수령하지 않는지, 나상현 씨는 왜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나상현 씨가 복권을 사게 될지. 예상은 어긋나기도 하며, 애초에 질문의 전제부터 잘못된 경우도 발생한다. 그러나 글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그 하나하나의 결과가 어긋날 수 있을지언정 글 전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나아갈 수 있다. 독자의 상상과 맞아떨어지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점이 다른지 확인하는 것도 독서의 한 과정이다.
파견보고서가 질문을 던지며 텍스트를 읽고, 추가된 정보를 반영해 해석을 조정하는 과정이었다면, 업무협조 보고서는 텍스트에 명시되지 않지만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다룬다. 업무협조 보고서에서는 의도적인 중의성이 사건 해결의 핵심이 된다.
김 대리의 보고서가 읽기 과정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데는, 글이 전개되는 방식의 영향도 크다. 김 대리와 인턴, 김 대리와 수희는 인간 세상에 뛰어들지만 그 속에서 직접 사람들과 부딪치며 녹아드는 장면이 많지 않다. 주로 사전에 확인된 정보, 상대가 해주는 설명 등에 의지해 사건을 파악한다. 특히 업무협조 보고서에서 그런 특성이 두드러진다. 꿈 훼손이나 탈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김 대리는, 수희를 통해 꿈의 오류와 자각몽, 드림 워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알고 있는 것과 알게 된 것에 비추어가며 모르는 것을 하나씩 파헤치는 과정이 글의 전체적인 흐름이다.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면밀히 읽어가며 해석하는 과정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드림 워커의 주도면밀한 길몽 갈취 범죄로 추정되었던 사건들은, 학업에 지친 평범한 고등학생이 우연히 경험한 사건에 불과했다. 꿈 속 세상의 신비나 긴장감 가득한 수사를 기대했다면 다소 아쉬운 결과일지 모르나, 말미에 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충분히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다.
“이제 장태주가 다른 사람의 꿈을 꾸지 않고 자신의 꿈을 꾸면 좋겠네요.”
장태주의 꿈은, 잠에 들어 꾸는 꿈과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수희는 그것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장태주가 의미를 독자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그걸 지켜보는 김 대리도 마찬가지다.
문장의 사전적 의미와 그걸 받아들이는 독자의 이해에 대해 생각해보자. 수희는 다른 이의 꿈을 탈취하는 드림 워커를 추적하다 장태주를 발견했다. 그가 더 이상 자신의 꿈 속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의 꿈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꿈 쇠고랑을 걸어주며 다른 이의 꿈을 쫓아가지 말라고 일러준다. 수희의 행적과 지금의 행동을 함께 고려하면, 수희가 하는 말의 일차적 의미는 밤에 꾸는 꿈이 분명하다.
그러나 장태주에게는 다르다. 부모님이 바라는 꿈이 자신의 꿈이라 여기고, 꿈을 사고파는 일의 효과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꿈’이라는 단어가 두 번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장태주라는 인물이 처한 맥락 속에서는 그것이 타당한 해석이다.
김 대리는 수희와 함께 수사하며 드림 워커 장태주의 존재를 알았고, 장태주와 대화를 나누며 고등학생 장태주의 꿈을 알았다. 그는 수희의 말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꿈의 의미가 이중적으로 해석된다는 걸 알았다.
읽기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이 글을 읽을 때,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길몽팀과 달리 흉몽팀은 어느 정도 실적을 올리고 있다, 강력수사팀 수희와 달리 길몽팀 인턴은 현세에 익숙하다, 수사팀은 꿈 속에서 활동하며 각종 범죄와 오류에 대응한다…
사건의 전개에 있어 꼭 필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글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독자는 간단히 언급되며 지나가는 요소들을 기억했다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적용하기도 하고, 배경의 그려지지 않은 부분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력을 부풀리기도 한다.
텍스트에는 문장으로 제시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직접적으로 서술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또한 내용 이해에 필수적인 요소가 있는가 하면 소소한 디테일에 해당하는 요소도 있다. 후자의 경우 실제로 서술된 대사와 행동에 근거를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며, 독자의 상상이 자라나는 토대가 되어 글을 다채롭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보자. 김 대리의 보고서에는 명확히 언급되지 않았으나, 읽고나서 짐작해볼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길몽은 사후에 확정된다는 점이다. 꿈을 꾸는 시점에서는 그것이 길몽인지 확신할 수 없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나상현 씨처럼 누군가를 구한 다음에 “어제 꾼 길몽 덕분인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사장의 질문은 처음부터 핵심을 비껴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길몽을 만들었지만, 꿈을 꾸는 인간들의 입장에선 그것이 길몽인지, 늘 꾸는 꿈에 불과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이사장의 질문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길몽팀의 실적이 왜 이렇게 저조한지? 꿈을 생각할 여유도 없고, 길몽이었다 느낄 만큼 행복한 일도 적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밤 사이 꾼 꿈이야 금세 잊어버리고, 현실에 치이며 살아가기에 급급한 인간 세상의 분주함을 암시하지는 않는가?
업무협조 보고서 속 수희의 대사를 생각하면, 위 질문들 또한 숨은 뜻을 가지게 된다. 정말 이러한 질문들 속 꿈은, 잠에 들어 경험하는 정신적 현상만을 말하는 것일까? 당신은 무엇을 꿈꾸는가?
이처럼 김 대리의 보고서는 읽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전히 꿈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세의 인물들은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길 것이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간직할 것이다. 이들을 지켜보던 바깥 세상의 존재들도 수희에게 치맥을 권하는 김 대리처럼 각자의 행복을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사건을 바로잡되 현세의 인물들이 자신만의 자리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시선 안에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처럼 사려 깊은 관심 속에서 인물들이 저마다의 자리로 돌아갈 때,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만의 꿈을 가져야 한다’ 같은 상투적인 교훈이 새삼스러운 울림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