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담백한 말을 좋아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핵심을 전달하는, 그런 문장 혹은 말을 만나면 나는 배시시 웃는다. 이 소설 <Karl>의 소개글처럼.
– 나는 칼(karl)입니다. ‘칼’이고요.
이 짧은 문장은 소설의 첫 문장이기도 하다. 또한,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내용 역시 ‘저 문장’ 안에 포함되어 있다. 정말로 우리에게 44매의 짧은 듯 긴, 복잡한 듯 단순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주방칼’이기 때문이다. 바로 칼이 이야길 들려준다는 데서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한다. 칼은 ‘가치판단’하지 않고 전해줄 따름이니까. 느끼고 예감하며 서글퍼하는 건 이 글을 읽는 우리의 몫이다.
칼(karl)은 서울 어느 빌라의 2층 투룸, 주인집 아들의 방 세 번째 서랍에 살고 있다. ‘키친 쿡 퀸 주방 칼 3종 세트’의 일부이나 이젠 홀로 남았고, 전체 길이 33cm에 칼날 길이 21cm인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방 서랍이나 싱크대 내부가 아닌 방의 ‘서랍’ 안에 자리하고 있다. 칼(karl)을 향한 주인집 아들의 기이한 집착 때문인데 그 시작은 집이 폭삭 망하면서부터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칼(karl)의 주인은 부자로 꽤 큰 회사를 운영했으며 그 아들은 외제차 <포르쉐 911>을 타며 명문대까지 졸업한 재원이었다. 대학시절까진 모든 게 풍족하고 좋았지만, 졸업 이후엔 번번이 취직에서 고배를 마셨고, 주인의 회사마저 휘청거리더니 망하면서 아들의 인생은 수직 하락했다. 웬만한 짐은 다 버려졌고, 집은 아주 좁아졌으며, 아들은 아끼던 <포르쉐 911>의 키까지 내놓아야 했다. 아주 익숙한 스토리다. 사업은 크게 돈을 버는 만큼 한방에 크게 망하기도 하니까. 주인의 아들은 주방칼 ‘칼’에게 자주 속삭였다.
– <포르쉐 911> 나중에 꼭 다시 되찾을 거야. 넌 그게 얼마나 빠르고 아름다운지 모를 거야. 사실 그 아이 이름이 ‘karl’이었어.
아이러니하게도 엘리트 코스를 밟거나 가진 자일수록 ‘추락’에 대한 공포가 크다. 추락해 봐야 그리 지옥이거나 밑바닥도 아닌데, 그들의 살아온 환경과는 180도 달라지기 때문에 잘 감당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감당하게 되더라도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주인집 아들에게 펼쳐진 ‘미래상’도 바로 그런 것이다. 부유한 집 그리고 명문대 출신으로 딱히 남 눈치 볼 이유가 없었던 아들은 남의 비위에 맞춰야만 하는 ‘취준 절차’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헌데 이제는 든든한 뒷배마저 없어진 상황에서 무조건 ‘사회’에 ‘나란 사람’을 맞춰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아들은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졌고, 취직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집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았다. 부모와도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된 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방안에 틀어박혀서 게임을 하거나 웹서핑을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상호교류하고 이야기하길 바라는데, ‘할 수 없으니’ 웹상으로도 나름의 소통을 하려고 하는지도. 또 한번 더 아이러니하게도 이것만큼 불행의 밑바닥까지 내려 앉는 일이 없다. 허무하기 때문이다.
게임에 실컷 빠져 있다가 나오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현실은 시궁창이란 게 너무 잘 느껴진다. 웹서핑을 하다 보면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이고, 비정상적으로 비뚤어진 사람들도 너무도 많다. 정상 감각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보다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는 사람들이 댓글이나 게시글을 통하여 분노나 울분 그리고 잘못된 계몽사상을 부르짖는 경우를 우리는 꽤 자주 마주한다.
여기까지 리뷰만 봐도 알겠지만, 스스로 고립된 자와 주방 칼. 떠오르는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최근에 우리 일상에 자주 출현했던 바로 그 사건이다. 잠시 떠올리기만 해도 불편해지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신기하게도 ‘그 결말’을 알면서도 끝까지 읽게 된다.
주방칼의 시점에서 자신을 둘러싼 사건, 인물을 서술하고 있어서인가 나는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고 그저 바라보며 ‘의문 어린 질문’을 던지는 문장들이 좋았다. 이해하지도, 탓하지도 않은 채 칼(Karl)은 모든 것을 바라봤을 따름이지만,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기에 ‘결론적으로’ 제- 몸으로 피해를 당하게 된다. 주인이 칼(Karl)의 몸을 자신의 잘못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마구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짧다. 44매로 한번에 스르륵 읽힌다. 허나 그 여운은 참 길다. 식자재로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여 사람들에게 삶을 선사하는 도구로 태어난 주방칼은 그것과 정 반대에 서 있는 행위를 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인간에 의해서. 나는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지옥을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허니 섣불리 누군가의 아픔을 역추적하거나 속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탓인 것을 남탓으로 돌리거나 어떠한 행위로든 남에게 폐를 입히는 자는 용납하지 않는다. 칼(Karl)에게 이름을 붙여준 주인집 아들은 딱 그 케이스였다.
허나 칼(Karl)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었기에 나는 주인집 아들의 민폐 어린 모습까지도 다 보았다. 여러번 말하지만 시선이 갖는 힘이라 생각한다. 평소라면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을 거니까. 그렇게 전체를 다 보고 나니까 더 복잡해 진다. 인간이란 참 강한 듯하면서도 나약하고 나약한 듯 하면서도 강하다. 이 복잡다난한 감정을 한번 느껴볼 준비가 되었다면 스르륵 읽어보도록. 참, 잘 읽히고 간만에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