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장르 내에서 향유하기 가장 까다로운 건 코즈믹호러라 생각합니다. ‘미지의 무언가로 인해 인간 지성과 믿음이 부정 당하는 공포’가 와닿으려면 불변하는 것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우선해야 하는데,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그런 것을 지닌 인물을 조형하기는 어렵죠. 지금보다 더 미래로 간다면(사실 러브크래프트가 쇄빙선으로 태평양 아래 잠들어 계신 그 분을 기절시킨 뒤로) 외우주에 대한 공포는 이계의 위대한 신들을 어떻게 잘 죽일 지에 대한 담론으로 대체될 겁니다. 코즈믹 호러가 SF로도 읽히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시간적 배경이 과거가 된다면 우리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벗어나 미지에 대한 공포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40일의 바다」는 코즈믹 호러가 가장 호러다울 수 있는 시대를 정확히 짚어냅니다. 서간체 형식의 긴 경고문 속 내용과 흑사병 창궐의 연유를 연결한 것은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 하나를 심해에서 건져 올린 듯한 느낌을 줍니다. 지중해가 유럽인들의 바다 전부였던 시대에, 그 바다에 기대어 사는 선원들에게 뻗어진 불가해한 역병과 또 다른 신의 마수라는 설정은 영리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코즈믹호러의 맛을 아는 분들이시라면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읽게 될 겁니다. 역시 인류는 쇄빙선을 발명하면 안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