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부 브릿지 연재로 읽다가 마음에 들어 종이책으로 읽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옅어지는 시트콤의 색채가 아쉬웠음을 먼저 밝히고 싶다. 하기사 집과 마을과 정든 이웃들이 온갖 괴이와 이계에 먹히고 사라지고 다치는데 언제까지고 웃고 웃길 수는 없는 노릇이겠다만, 온갖 패러디와 농담이 난무하는 초반이 워낙 맘에 들어서일까…
– 시골
서울 사람이 시골 내려가 정착하고 살기가 무척 어려울 것 같은데, 작가 (지망생) 미혼 여자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현실이라면 이웃의 오지랖도 텃세도 무섭고 불편했을 것 같은데, 주인공 미호도 보통 사람은 아닌지라 아무리 이상하고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도 무심하게 활로 쏘거나 속으로 혼잣말을 하거나 한다… 차가 다니는 좁은 길, 마당과 대문, 저수지와 숲으로 이어지는 길 등 생생한 시골 묘사가 좋았다. 시골 생활이 녹록치 않은데도 은근한 여유가 느껴지는 점도 재미.
– 호러
‘괴이’란 이름처럼, 딱 떨어지게 설명되지 않는 으스스함이 있다. 뭔가 끔찍하고 두려운 것들이 주위에 있는데, 그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이상한 이웃 사람들은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데서 오는 공포. 뭔가 악몽처럼 모양새도 달라지고 앞뒤 없이 모호한 말들이 이어지는 이미지도 무섭다. 오컬트, 슬래셔, 고어 같은 요소들이 번갈아 나오는데 으악… 윽…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둑이, 흉조의 얼굴이 사람 얼굴이라는 데서부터 아주 끔찍한 느낌. 어릴 때 봤던 공포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서울에서 세연을 구출하는 장도 무척 무서운데, 혼자 겪는 무서운 일과 혼자서 먼 길 떠나 구하러 가는 무서운 각오가 생생하게 느껴져 좋았다. 뭔 민폐 취객처럼 등장해서 소름 돋게 하는 도철도 인상적이고.
– 판타지
거칠게 요약하면 현실에서 아직 딱히 이룬 것 없는 주인공 미호가, 새로운 세계를 넘나들며 자기의 힘을 키우고 익히고 깨달아 큰 일을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미호가 어떤 이야기를 쓰는지는 비중이 크지 않았기에 결말부에서 이야기로써 이계를 다스리고 정리하는 부분이 조금 덜 와닿았지만 이웃 수호자들의 조언과 경험도 자기 생각과 철학, 마음에 비추어 무시학거나 거스름으로써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골치아프게 만들어가는 점도 재미있다. 소년과 소의 이야기에 이르러 문체도 확 달라지면서 더 모를 세계로 들어가는데, 무섭고 끔찍하지만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누가 누군지 헛갈리기도 했다. 이런 점이 호러/판타지로서 좋은 것도 있었고…
– 시트콤
앞서 썼듯 갈수록 희미해져 아쉬웠던… 제일 웃기고 좋은 캐릭터는 김 서방과 그의 말투다. “어? 어… 왜?” 대충 이런 느낌으로 반복되는데 정말 어수룩하고 뭔가 싫으면서도 대단치 않아서 짠한 느낌이 들었다. 왜 다들 서로 김 서방으로 부르는지도 궁금한데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또다른 김 서방을 만날 수도 있을까? 이런 인물을 그렇게 퇴장시키다니… ㅠㅠ 하지만 검둥이들과 함께 사라지는 김 서방의 마지막 모습도 그답고 좋았다. 뭔 일을 겪든 대충 무심한 표정으로 놀라고 해치우는 미호도 은근히 웃기고, 헛소리하는 고양이와 얄미운 잔소리꾼 조풍, 민폐 치과의사와 돼지코 도철도 조금씩은 웃긴 데가 있다. 미호의 혼잣말로 코미디를 이룬 점이 조금 아쉽기도 했는데, 덕분에 더 쉽게 웃은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인물들은 변했고 사라질 뻔하다가 남고 사라지기도 했는데, 더 크고 무서운 것이 올 테지. 미호는 그새 얼마나 성장한 모습을 보일지, 그때 무대는 여전히 이계리일지, 어떤 이야기가 함께 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