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에게 납치된 가족을 구하지 말라, 기묘한 게임이 있다?!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수상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어 (작가: 이규락,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10월, 조회 93

나는 게임을 잘 모른다. 게임의 종류도 잘 모르며, 프렌즈팝 외에는 진득하게 해 본 게임도 없다. 그런데 이 소설… 게임의 ‘게’자도 모르는 내가 마치 게임 안에 들어가 있는 듯,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더구나 ‘강렬한 몰입’ 상태로. 차분한 문장력과 군더더기 없지만 ‘명료한’ 묘사가 인상적인 소설 <Red Bastard>는 게임을 즐겨 하는 독자에게도, 게임을 아예 모르는 독자에게도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바로 내게 그러했듯. 이 소설의 핵심은 어린시절에 대한 많은 기억들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그 시절 클리어하지 못했던 게임’을 다시 하면서 잊고 있던 자신의 과오와 마주하게 되는 내용이니까 말이다.

첫 문장은 ‘누구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을 겁니다’라는 차분한 어조로 시작된다. 그 뒤로 이어지는 묘사들, 그러니까 롤러스케이트라던가 쇠와 나무로 이뤄진 미끄럼틀 그리고 문방구 앞의 오락기와 ‘폐건물’까지 진행되는 화자의 ‘어린 시절의 풍경’들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내 어린시절의 풍경들을 떠올렸다.

쇠와 나무로 이뤄진 미끄럼틀 아래서 나와 친구들은 때론 죽어버린 금붕어를 묻었고, 때로는 나뭇가지로 마구 파헤쳐 만든 구덩이 위로 낙엽과 신문 그리고 흙을 덮어서 ‘함정’을 만들었다. 또 가끔은 미끄럼틀 끝까지 거꾸로 올라가는 ‘탈출게임’을 하고는 했다. 그 모든 기억들이 명확하진 않지만, 우리 동네에도 ‘귀신의 집’이라 불리는 ‘폐가’가 있었다. 대부분의 동네에 있었듯이-

이 소설 <Red Bastard>가 인상적인 것은 도입부에 스치듯 지나갔던 ‘폐가’가 이 소설의 ‘핵심 사건’과 연결있다는 점을 엔딩부에 가서야 알게 된다는 점이다. 씨뿌리기와 거두기가 잘 이뤄진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폐가의 모습을 묘사한 문장 역시 인상적인데 일부 발췌해보겠다. <죽은 거인의 관처럼 양옆으로 기다랗게 뻗은 벽, 회색 페인트로 뒤덮인 표면, 군데군데 덩굴처럼 내려온 칠 벗겨진 흔적, 깨진 유리창, 어두운 그늘에 가려진 내부… 불길한 붉은 빛으로 물드는 노을 배경으로 그 건물을 오랫동안 노려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누군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기묘하게도 스팅의 ‘Shape of My Heart’를 떠올렸다. 아주 오래된, 꼬맹이 시절에 우리끼리 떠들어대던 느와르 혹은 ‘호러’와 잠시 ‘접촉’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귀신의 집으로 소문났던 그 폐가가 담력 시험을 하는 장소로 쓰였다던가, 가출 청소년의 아지트였다거나, 누군가의 썩어가는 시체를 주인공 또래의 아이가 발견했다는 이야기까지 덤덤하게 이어나가던 화자는 돌연히 <Red Bastard>라는 게임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건 화자가 블로그에 쓴 이야기가 곧 이 소설이라는 설정 덕분이다. 우리는 소설의 독자이며 동시에, 주인공 ‘나’가 오랜만에 블로그에 쓴 긴 글을 읽어내려가는 독자가 된 셈이다. 이 설정이 흥미로웠던 것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내용을 무작정 믿고 따라가야 하며, 주인공이 말하지 않는 내용은 결코 알 수 없다는 지점에서 ‘미스터리’가 발생한다는 데 있었다. 문장이 차분하면서도 흡입감 있어서 정말 인터넷에서 괴담 썰을 읽는 것처럼 나는 몰입했다. 그, 실제하지 않지만 이 소설 안에서만은 ‘확실하게 존재하는 고전게임’ <Red Bastard>에 대하여.

은퇴를 앞둔 아버지, 대책 없이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는 형과 한 집에 살면서 지원서를 넣는 회사마다 떨어지길 반복하던 주인공은 간만에 고전 게임을 모아둔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잊었던 그 게임과 조우한다. 새벽 네 시가 넘어갈 즈음 사이트 하단에 자리한 오픈 채팅창에서 주인공은 <Red Bastard>라는 고전 게임을 아느냐고 묻는 문장과 마주한 것이다. 바로 그 질문을 한 사람이 게임을 다시 할 수 있는 링크를 남겨주면서 게임을 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겪게되는 기묘한 일이 ‘이 소설의 핵심 사건’이다.

이 소설을 더욱 ‘괴담’처럼 만드는 것은, 기괴한 멜로디가 배경음으로 깔리는 이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게임 서사의 룰’를 무시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스테이지 1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빨간 괴물이 아내와 두 딸을 납치하도록 내버려둬야 했고, 대체로 빨간 괴물을 처치하는 형태로 구성된 여타 게임과 달리 괴물을 폭행해도 스테이지 2를 클리어할 수 없었다. ‘나’는 이 게임을 회상하며 서안이라는 어린 시절 친구를 떠올린다. ‘나’는 서안과 함께 스테이지 2를 클리어 했는데, 가족을 구하는 대신 빨간 악마(아마 동일한 괴물로 생각되나 소설 속에선 악마로 표기)와 거래를 하고 가족들을 팔아남겨야 했다. 주인공 ‘나’는 이 기묘한 게임의 스테이지 3을 깨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한 채’ 친구 서안과 헤어졌다. 서안이 그 게임팩을 갖고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주인공 ‘나’는 스테이지 3을 깨면서 오픈 채팅방으로 만났던 알 수 없는 사람과 꾸준히 소통한다. 게임을 다운 할 수 있는 링크를 받으면서 실제 아이디를 나눴고, 먼저 ‘클리어’하는 사람이 꼭 먼저 연락하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겨우 취직해서 바쁜 신입 생활을 보내는 와중에도 주인공은 종종 게임에 몰두하며 스테이지 3을 깨기 위한 ‘루트’ 찾기에 나선다. 게임은 점점 더 기묘해지고, 주인공은 ‘서안’에 대하여서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따금 자신을 죽도록 패던 형으로부터 입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 생각한다. 게임의 스테이지를 깨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면서 주인공 스스로가 ‘잃어버렸던’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서도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 속 기묘하고도 강렬한 장면 그리고 ‘그’ 게임을 만든 컬트 집단에 대한 썰 그리고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서안’에 대한 비밀이 차근차근 ‘비밀의 보따리’가 풀리듯 풀어져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에는 기이하게도 주인공의 퇴근길에 ‘어린 시절의 그 폐가’가 실존하는 것처럼 나타나며 빨간 괴물의 환상이 다가와서 속삭인다. “Take responsibility for your sin”이라고. 너의 죄를 마주하라는 건 무슨 이야기일까. 주인공 ‘나’가 당황스러워하듯, 나 역시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그 뒷 이야기를 꼼꼼하게 읽었다. 마지막 즈음에 밝혀지는 ‘진실’은 미스터리/스릴러/호러 장르를 좋아하면 독자라면 선뜻 예상 가능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래서 더 서글프다.

게임과 어린 시절 기억과 현실 그리고 감정과 관계가 풍성하게 얽혀 있는 소설이어서 따라가는 여정 내내 즐거웠다. 메모해 둔 문장들이 몇 있을 만큼 몰입감 있고, 감각적인 묘사도 많았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결말에서 다소 ‘힘이 빠진 느낌’이 들었다는 데 있다. 여기서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하진 않겠지만, (이 리뷰를 보는 사람들도 예상했듯) 주인공의 ‘과오’는 서안과 관련이 있다. 또한 ‘과오’를 알아채기 이전에 잘못된 선택을 하며, 마지막에는 ‘권선징악’ 느낌의 결론으로 끝낸다. 개인적으로 권선징악의 결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고, 주인공이 직접 서술하는 ‘블로그 글’임에도 주인공의 감정이나 ‘미쳐가는 상태’가 잘 느껴지지 않아서 결말에서 ?가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담담한 서술이나 부단히 ‘관찰자적인 느낌’이 나는 서술이었기에 마지막에 주인공이 ‘극단적 행동’을 하는 데선 독자로서 의아했다. 주인공의 감정이 조금 더 보여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든다. 혹은 주인공과 형, 서안의 과거사나 현재의 이야기가 조금 더 장면화되어 그려졌어도 좋았을 거 같다.

더불어서 결말부분에 이르러서는 현실적이라기보다 오컬트적인 환상/판타지에 가까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 이 장면이 짧게 보여져서 아쉬웠다. 반드시 ‘개연성’을 획득할 필요는 없고, 궤변이나 말이 안 되고 환상/판타지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소설 안에서만 ‘설득력’ 있으면 재밌다고 나는 생각한다. 허나 이 오컬트 판타지는 후반부에 너무 짧게 나와서(물론 중간중간 나오긴 했으나 게임과 관련된 환상처럼 그려져서 조금 느낌이 달랐다) 조금 더 분량이 길어졌어도 좋을 거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쉬움일 뿐, 읽는 내내 흥미롭게 몰입했다.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영화와는 다른 느낌으로 이 소설이 흥미롭기도 했고.

스포일러를 막기 위하여 많은 부분들을 가렸고, 이 소설을 흥미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생각되는 부분들만 썼다고 생각했는데도 리뷰 내용이 길어졌다. 결론적으로는, 이 리뷰를 보고 이 소설이 궁금해졌거나 게임, 호러, 오컬트,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가 있다면 혹은 좀 재밌는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면 이 소설을 한번 읽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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