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을 견딘 약속 – 사랑으로부터, 사랑에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랑해, 송곳니 (작가: 파랑파,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3년 10월, 조회 46

‘사랑’의 과정은 한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 서로에게 마음이 끌린 두 사람은 생명력이 충만한 아이가 세상에 첫발을 디디는 것처럼,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뜨거운 사랑만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동시에, 서로를 알아간다. 마치 아이가 일어나 앉고 걸으며 주변의 정보를 탐색해 가는 과정과 같다. 그러다 사랑은 위기를 만나기도 한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생각할 때,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그들에게는 권태감이 찾아든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성숙을 이룰 때, 비로소 찾아오는 더 깊은 감정과 경험이 삶을 가득 채운다. 사랑은 그렇게 성숙한다.

태동기에서 성숙기까지의 과정에서 사랑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온전한 사랑과 뜨거운 열정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그만큼 완벽한 관계는 없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성장하는 과정,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감정에는 정체기가 있다.

위기를 어떤 방법으로 슬기롭게 헤쳐가느냐는 다가올 성숙의 척도이기도 하다. 현실의 사랑에는 큰 위기가 적다. 가족의 반대나 주변의 만류가 있을지는 몰라도 나라가 망하거나 전쟁이 발생하거나 재난이 일어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또한 현실의 사랑은 이런 거대한 위기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기가 힘들다.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는 앞뒤와 이해를 계산하는 데에 빠르기 때문이다. 이미 모두는 세상을 휩쓴 큰 전염병의 위기에서, 서로의 마음이 얼마나 손쉽게 멀어지는지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야기 속 사랑은 그렇지 않다. 작가가 개연성을 부여하는 한, 전쟁에서도, 재난에서도, 국가적 위기에서도 사랑은 살아남는다. 아니, 오히려 그런 위기들은 사랑을 견고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향유자들은 주인공의 사랑에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설령 연인 중 한 명이 죽더라도, 그것이 완성되리라고 확신한다. 어떤 서사는, 귀신을 만들어서라도, 죽은 사람을 살려서라도, 다른 차원을 연결해서라도 사랑을 복원하기 때문이다. 로맨스의 역사는 사랑의 생존기이기도 하다.

한 번 어려움을 겪은 사랑은 성숙하고 견고해진다. 이것을 아는 영리한 작가들은 크게 비약적이지 않은 선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적당한 긴장감을 주고 다시 봉합하기에도 쉽지만 신선한 시련을 만들어내는 데에 골몰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로맨스 세계관에서는 사이가 안 좋은 두 가문 사이에서 반드시 한 쌍의 연인이 만들어지며, 전쟁의 위기 안에서는 죽음을 무릅쓴 사랑이 태동한다. 귀신의 한을 풀어주면서 정이 들고 마는 퇴마사와 아홉 번 환생해서라도 사별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구미호의 이야기는 어떠한가. 사랑을 가로막는 어려움이 다채로울수록 그 끝에서 완성되는 로맨스의 범위와 종류 역시 다양해진다.

환상 소설에서, 독자는 종종 신과 인간, 인간과 구미호, 귀신과 사람처럼 인간과 타 존재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를 마주한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기 마련인 ‘사람’의 입장에서 신은 경외의 대상이며 이물(異物)은 배척의 대상이다. 귀신은 두려운 존재이며, 동물은 지배의 대상이기에 단연코 어떤 사람이 그들 중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관점과 입장에 따른 무게 중심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신과 인간의 사랑에서는 신이 우위를 차지한다. 인간과 요물의 사랑은 당연히 같은 인간에게 인정받기 힘들다. 심지어 흡혈귀나 구울 등은 사람의 생명에 치명적인 존재이므로 그들과 인간이 사랑에 빠진다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위기에는 늘 긴장감이 있다. 긴장감의 다른 말은 ‘스릴’이기에 극단적인 위기에 놓인 사랑의 완성은 한편으로 짜릿한 쾌감을 불러온다. 그 과정에 어떤 어려움과 위험이 따르더라도, 인간과 다른 존재가 드디어 모든 방해물을 딛고 완전한 사랑의 안전지대에 진입하면 독자들은 풀어진 긴장감에 안도의 숨을 쉰다. 롤러코스터와 암벽 등반, 스카이다이빙처럼 위험천만한 스포츠가 주는 시원한 성취감과 맞먹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감정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에, 스릴러를 동반한 로맨스는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제3회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 우수작인 《사랑해, 송곳니》는 사랑과 긴장감의 역학관계를 예리하게 파고들어 입체적으로 활용한 장편 연재소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흡혈귀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이 소설에는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작가만의 단정한 문체를 매개로 조화를 이룬다. 조선부터 현재까지, 흡혈귀부터 인간까지 배경과 인물의 확장을 도전적으로 시도한 이 소설은 여성의 이야기이자 한편의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이야기의 처음부터 심상하지 않은 분위기를 맞이한다.

이 소설은 1936년 11월 4일 자 『동아일보』의 토막 기사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신의주, 경성, 관서 등 지금은 쓰지 않는 예스러운 단어들과 붉은 피, 찢긴 고급 코트 자락 등 긴박한 몸싸움을 암시하는 문장들은 모두 “조선 미술계를 대표하는 연인”, 유명 화가 민완선과 그의 모델 한목란의 실종을 알리기 위해 쓰인다. 나체 모델 한목란과 ‘만월과 백자’라는 이름으로 애인인 그녀의 나체를 그렸던 화가 민완선은 한날한시에 실종된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신의주로 향하는 기차의 일등칸 삼호실에서 두 명의 남녀 승객이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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