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과정은 한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 서로에게 마음이 끌린 두 사람은 생명력이 충만한 아이가 세상에 첫발을 디디는 것처럼,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뜨거운 사랑만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동시에, 서로를 알아간다. 마치 아이가 일어나 앉고 걸으며 주변의 정보를 탐색해 가는 과정과 같다. 그러다 사랑은 위기를 만나기도 한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생각할 때,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그들에게는 권태감이 찾아든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성숙을 이룰 때, 비로소 찾아오는 더 깊은 감정과 경험이 삶을 가득 채운다. 사랑은 그렇게 성숙한다.
태동기에서 성숙기까지의 과정에서 사랑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온전한 사랑과 뜨거운 열정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그만큼 완벽한 관계는 없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성장하는 과정,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감정에는 정체기가 있다.
위기를 어떤 방법으로 슬기롭게 헤쳐가느냐는 다가올 성숙의 척도이기도 하다. 현실의 사랑에는 큰 위기가 적다. 가족의 반대나 주변의 만류가 있을지는 몰라도 나라가 망하거나 전쟁이 발생하거나 재난이 일어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또한 현실의 사랑은 이런 거대한 위기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기가 힘들다.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는 앞뒤와 이해를 계산하는 데에 빠르기 때문이다. 이미 모두는 세상을 휩쓴 큰 전염병의 위기에서, 서로의 마음이 얼마나 손쉽게 멀어지는지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야기 속 사랑은 그렇지 않다. 작가가 개연성을 부여하는 한, 전쟁에서도, 재난에서도, 국가적 위기에서도 사랑은 살아남는다. 아니, 오히려 그런 위기들은 사랑을 견고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향유자들은 주인공의 사랑에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설령 연인 중 한 명이 죽더라도, 그것이 완성되리라고 확신한다. 어떤 서사는, 귀신을 만들어서라도, 죽은 사람을 살려서라도, 다른 차원을 연결해서라도 사랑을 복원하기 때문이다. 로맨스의 역사는 사랑의 생존기이기도 하다.
한 번 어려움을 겪은 사랑은 성숙하고 견고해진다. 이것을 아는 영리한 작가들은 크게 비약적이지 않은 선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적당한 긴장감을 주고 다시 봉합하기에도 쉽지만 신선한 시련을 만들어내는 데에 골몰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로맨스 세계관에서는 사이가 안 좋은 두 가문 사이에서 반드시 한 쌍의 연인이 만들어지며, 전쟁의 위기 안에서는 죽음을 무릅쓴 사랑이 태동한다. 귀신의 한을 풀어주면서 정이 들고 마는 퇴마사와 아홉 번 환생해서라도 사별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구미호의 이야기는 어떠한가. 사랑을 가로막는 어려움이 다채로울수록 그 끝에서 완성되는 로맨스의 범위와 종류 역시 다양해진다.
환상 소설에서, 독자는 종종 신과 인간, 인간과 구미호, 귀신과 사람처럼 인간과 타 존재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를 마주한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기 마련인 ‘사람’의 입장에서 신은 경외의 대상이며 이물(異物)은 배척의 대상이다. 귀신은 두려운 존재이며, 동물은 지배의 대상이기에 단연코 어떤 사람이 그들 중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관점과 입장에 따른 무게 중심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신과 인간의 사랑에서는 신이 우위를 차지한다. 인간과 요물의 사랑은 당연히 같은 인간에게 인정받기 힘들다. 심지어 흡혈귀나 구울 등은 사람의 생명에 치명적인 존재이므로 그들과 인간이 사랑에 빠진다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위기에는 늘 긴장감이 있다. 긴장감의 다른 말은 ‘스릴’이기에 극단적인 위기에 놓인 사랑의 완성은 한편으로 짜릿한 쾌감을 불러온다. 그 과정에 어떤 어려움과 위험이 따르더라도, 인간과 다른 존재가 드디어 모든 방해물을 딛고 완전한 사랑의 안전지대에 진입하면 독자들은 풀어진 긴장감에 안도의 숨을 쉰다. 롤러코스터와 암벽 등반, 스카이다이빙처럼 위험천만한 스포츠가 주는 시원한 성취감과 맞먹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감정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에, 스릴러를 동반한 로맨스는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제3회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 우수작인 《사랑해, 송곳니》는 사랑과 긴장감의 역학관계를 예리하게 파고들어 입체적으로 활용한 장편 연재소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흡혈귀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이 소설에는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작가만의 단정한 문체를 매개로 조화를 이룬다. 조선부터 현재까지, 흡혈귀부터 인간까지 배경과 인물의 확장을 도전적으로 시도한 이 소설은 여성의 이야기이자 한편의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이야기의 처음부터 심상하지 않은 분위기를 맞이한다.
이 소설은 1936년 11월 4일 자 『동아일보』의 토막 기사1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신의주, 경성, 관서 등 지금은 쓰지 않는 예스러운 단어들과 붉은 피, 찢긴 고급 코트 자락 등 긴박한 몸싸움을 암시하는 문장들은 모두 “조선 미술계를 대표하는 연인”, 유명 화가 민완선과 그의 모델 한목란의 실종을 알리기 위해 쓰인다. 나체 모델 한목란과 ‘만월과 백자’라는 이름으로 애인인 그녀의 나체를 그렸던 화가 민완선은 한날한시에 실종된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신의주로 향하는 기차의 일등칸 삼호실에서 두 명의 남녀 승객이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었다.
《사랑해, 송곳니》는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가상의 조선 화가 민완선과 그의 애인 한목란의 실종에 숨겨진 내막을 21세기 대한민국의 학예사 다현과 그의 동료 하진이 파헤치는 로맨스 스릴러 장르 소설이다. 1부에서는 다현과 하진의 관계를 중심으로 과거의 비밀스러운 사건이 곳곳에 삽입되며, 2부에서 하진의 과거를 통해 그 진실을 숨긴 베일이 서서히 벗겨진다. 3부에서는 현재에서 진행되던 추리가 절정을 맞이하고 4부에서 완선과 목란, 다현과 하진의 사랑이 동시에 완성된다.
이 소설은 과거의 완선과 목란, 현재의 다현과 하진의 로맨스가 평행하게 이어진다. 둘 사이에는 묘하게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으며, 과거의 기록을 파헤칠수록 현재의 진실이 함께 드러나는 흥미로운 구조이기도 하다. 단지 학예사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던 다현이 백 년 전 그림 속에 담긴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풀어내는 과정은 극적이고 환상적이지만 동시에 구체적이다. 민완선, 한목란, 만월과 백자를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넣어본 독자들은, 그것들이 모두 작가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 번 더 놀라게 될 것이다.
1부에서 완선과 목란의 사랑에 가장 먼저 발을 딛는 것은 다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사 다현은 삼 년을 사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넌 나보다 죽은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그는 일에만 집중하는 다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자친구의 말은 언뜻 보기에 맞는 것 같지만, 완전히 틀렸다. 그가 다현이 역사를 담은 물건들을 좋아하는 이유를 오판했기 때문이다. 다현은 과거의 작품과 유물을 “죽은 이들이 거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그들(과거의 사람들)은 영생한다.” 남자친구가 보기에 다현의 일은 죽은 자들의 과거를 연구하는 것에 불과했겠지만, 다현은 그 안에서 생명력을 얻은 이들과 대화하고 있던 것이다. 다현은 물리적으로 한 번 죽은 사람들의 기록을 토대로 그들을 소생시킨다.
그런 다현에게 다가온 동료 하진은 매우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모던걸’의 그림을 보고 있던 다현에게 ‘모던걸’ 같은 하진이 다가오는 장면은 강렬하다. 유물을 복원하는 일의 특성상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울 수밖에 없는 둘은 동질감과 공감을 넘어선 미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하진이 텀블러에 사람 피를 들고 다니는 것2을 알게 된 후로 다현은 그녀에게 다가가는 속도를 늦춘다. 피를 마시는 존재. 독자가 하진의 정체를 짐작하는 데는 충분한 단서다. 그러나 흡혈귀가 환상 속에만 있다고 믿는 다현은 그 사실을 쉽게 믿지 않는다. 완선이 그린 목란을 보며 “뱀파이어에게 물리기라도 했나”라는 농담을 던지던 다현이 그것이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서늘한 생각을 하며 1부는 마무리된다.
다현의 말대로 ‘만월과 백자’ 연작에서 목란의 목에 찍힌 두 개의 점이 흡혈귀의 잇자국이라면, 그의 연인 완선이 흡혈귀일 가능성이 있다. 잇자국은 누군가 ‘물어야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완선은 하진과 관련이 있을까. 작가는 흡혈귀로 추정되는 두 인물이 완전히 동일인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일부러 소설의 도입에 완선의 성별을 남성으로 공개한다. 하지만 뒤에서 밝혀지는 바, 흡혈귀는 목란이고 완선은 여성이다. 작가는 1부에서 두 개의 비밀을 온전히 지킨 채 하진의 정체를 성공적으로 밝힌다.
2부는 시간적 배경이 과거로 바뀌며 시작된다. ‘만월과 백자’ 연작의 네 번째 작품에 얽힌 비밀이 베일을 벗는 부분이기도 하다. 2부에서는 여성을 향한 사회의 제약과 그럼에도 꽃피는 은밀한 사랑이 주제인 만큼, 두 주인공 연선과 목란의 관계는 1부의 다현과 하진의 아슬아슬한 그것보다도 비밀스럽다. 여자로 태어난 연선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오빠 완선의 이름을 빌려야만 했다. 수백 년도 넘게 살아온 목란은 몸이 약해 죽은 남편을 따라 목을 매 열녀가 되라고 시어머니로부터 권유받는다. 이 둘에게 여성으로서 태어나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삶은 장애물투성이다.
1930년대의 조선, 여성의 예술 활동과 자유로운 연애가 지금보다 더 제한되던 시기다. 그런 시대의 예술가와 연인으로서 두 인물의 만남은 이미 신비롭다. 열녀로서 죽기보다 영생의 고통을 선택한 목란과 예술에 목말라 남장을 선택한 연선이 만난 ‘누드 크로키 모임’은 공간적 배경 이상의 의미가 있다. 목란은 흡혈귀로서의 자신을 숨기고 인간 행세를, 연선은 여자로서의 자신을 숨기고 남자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단단히 정체를 감춘 존재들의 첫 만남 장소를 ‘누드 크로키 모임’으로 설정함으로써 작가는 그 둘이 결국 서로의 비밀을 벗겨낼 것임을 암시한다. 머지않아 목란은 연선이 여자임을, 연선은 목란이 흡혈귀임을 알아챈다.
방을 나가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하나씩 공유하고 있기에, 둘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진다. 자신의 본질을 감추고 오히려 드러나지 않기 위해 겹겹이 방어해야만 했던 두 사람은 오직 둘만이 있는 시공간에서 완전해진다. 눈부시게 빛을 뿜는 만월 아래 놓인 둥근 백자처럼, 연선은 목란의 몸을 붓과 시선으로 탐닉한다. 서로를 마주할 때 둘은 완벽한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모든 요소가 둘의 사랑에 있음에도, 연선과 목란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방해하는 건 외부 요소가 아니다. 목란은 스스로 연션과 멀어지기로 다짐한다. 그녀는 과거의 죽음에서 구원받는 대신 영생과 함께 멈추지 않는 이별의 고통을 선택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랑했던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그라지는 아픔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마음을 주고, 생각을 가득 채우던, 삶의 전부인 존재를 떠나보내고 끊임없이 홀로 남는 자의 외로움을 보상할 수 있는 건 없다.
목란에게 연선과의 이별은 예정된 아픔이기에, 그녀는 미리 천천히 멀어지는 것을 택한다. 연선은 그런 목란을 보내기 싫어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결정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흡혈귀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흡혈귀는 사랑하는 사람의 피를 빨면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그를 인간으로 되돌리자고 연선은 다짐한다. 그러나 연선은 기차에서의 시도를 실패한 채 영원히 목란과 이별한다. 이 헤어짐은 목란에게 이전에 경험했던 것들과 다른, 갑작스러운 상처였을 것이고, 예술가와 모델로서 두 여인이 맺었던 운명적 사랑의 종지부가 된다. 그런 이유로 목란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하진이라는 이름으로 연선과 그의 그림을 찾아 헤맨다.
하진의 과거를 모두 밝힌 후, 3부의 진술은 다시 현재로 되돌아온다. 과거의 비밀은 드러났지만, 아직 현재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있다. 연선은 인간으로서 죽었을까, 아니면 흡혈귀로서 생존했을까. 안타깝지만 연선은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맞았다. 한 번의 아픈 이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탓일까. 영원히 계속될 고통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조선의 여성 화가이자 목란의 애인이던 연선은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으로 남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하진은 연선의 그림을 담당한 학예사 다현에게서 한 번 더 사랑을 느낀다. 마치 숨겨지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듯, 사랑은 하진의 내면에서 고개를 쳐든다.
다현의 입장에서 3부는 하진의 정체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네 번째로 발견된 ‘만월과 백자’ 그림의 복원에서 다현은 과거의 연선이 완수하지 못한 과제를 깨닫는다. 연선은 목란과의 사랑을 미완으로 남겼다. 유물의 복원과 전시는 다현에게 과거와의 대화다. 과거의 시간을 견딘 물건들은 저마다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일백 년의 시간을 뚫고 다현에게 닿은 연선의 말은 아마도 사랑을 놓치지 말라는 당부가 아니었을까. “사랑했던 이들을 모조리 떠나보내고도, 앞으로도 더 많은 이를 떠나보낼 일밖에 남지 않은 존재”. 연선은 가엾은 애인의 몸에 자신이 남기지 못했던 두 개의 잇자국을 새겨 넣었다.
다현은 옛것들과의 대화를 사랑하는 학예사답게 그 메시지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 말처럼 유물을 들여다보는 일이 단지 죽은 자를 관찰하는 것에 그친다면, 다현은 하진을 사랑할 수 없었다. 시간이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그것에 답할 줄도 안다. “(과거의) 숨소리와 나의 숨이 끝끝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 이 소설의 4부에서 다현은 평생 바라온 소원을 이룬다. 처음으로 유물이 걸어온 말에 행동으로 응답할 기회가 찾아온 게 아닌가. 과거와 현재가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최초의 실마리를 찾은 게 아닌가.
흡혈귀로서 평생을 살아온 하진의 피를 빨고 그의 송곳니가 둥글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다현은 연선과 목란의 삶을 이어받은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연인의 목을 물고 그와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끼며, 그의 짐과 고통, 평생 짊어진 어깨 위 무게를 자신에게 옮겨왔다는 사실에 안도하지 않았을까. 연선과 다현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계보는 어떤 두려움도, 사회적 장벽도, 역사가 될 정도로 길게 흐르는 시간의 흐름도 단단히 연결된 마음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걸 증명한다. 목란은, 하진은 고통으로 가득하던 과거의 보상으로 백 년의 시간을 견디고 완성된 사랑을 선물 받는다.
사랑해, 송곳니.
너의 가장 깊숙이 있는, 남들과 다른 비밀조차 부드럽게 감쌀 수 있어. 다현이 흡혈귀였던 하진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던 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완결되는 전반부와 로맨스로서 온전한 사랑으로 고통을 끝내는 후반부를 역사와 여성, 사실과 허구가 부드럽게 연결한다. 실제적인 배경과 역사의 흐름 속에 고루 배치된 인간과 흡혈귀의 공존.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로맨스의 스릴 넘치는 여정을 함께한 독자는 진한 여운을 느끼며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다. “오늘도 함께 잠들 수 있어서 기쁘다”. 너와, 너의 실존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두 사람의 실종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두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며 끝나기까지. 열렬한 사랑의 탄생과 위기, 성숙이 완성되기까지. 수백 년을 살아온 흡혈귀와 한 세기도 견디기 힘든 인간의 짧고도 위태로운 만남은 송곳니와 송곳니의 마주침으로 완성된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사랑의 잉크로 그려낸 아름다운 암호를 미래의 수신자가 해석하는 이 구도에 어떻게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의 끝이 허기질 수밖에 없던 존재의 끝없는 고통.
그것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