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의 세계 공모(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공모채택

대상작품: 보일 수 없는 부분 (작가: 이준, 작품정보)
리뷰어: 적사각, 23년 10월, 조회 87

평온했던 일상은 새로운 인물과 만나면서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그것은 낯설고 아픔을 동반하지만 성장과 설렘, 그리고 든든한 우정 혹은 사랑을 얻기도 한다.

이 리뷰—감상은 소설을 읽으신 분들이 읽는 것이라 가정하고 필자가 작품에 대한 (과)해석과 궁금한 점을 마구 쓸 예정이기 때문에 아직 작품을 감상하기 전이신 분들이라면 작품을 먼저 읽고 감상문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필자는 제목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읽는 편이다. 제목은 독자와 소설의 첫 만남의 계기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일 수 없는 부분’. 필자는 읽는 내내 인물들이 무엇을 보여줄 수 없을까 염두에 두고 읽었다.

먼저 극을 끌어가는 인물, 최유진이 보일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최유진이 보일 수 없는 부분은 아마 ‘엄마’라는 존재일 것이다. 고등학생—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에게 가정은 쉴 수 있는 그늘막이자 쉼터다. 하지만 최유진에게 집은 벗어날 수 없는 족쇄이며 숨기고 싶은 비밀이다. 최유진의 엄마는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매일 술을 마신다. 아이는 그것이 당연한듯 안주를 만든다. 엄마는 아이를 걱정한다. 아니, 걱정 수준을 넘어 집착한다. 엄마의 등장은 처음부터 화려한데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의 옷을 다짜고짜 찢는다. 필자는 아이가 술집에서 공연한 사실에 화를 내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아이가 몰래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언제라도 자신의 곁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최유진은 이런 엄마에게 반항은커녕 싫은 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사춘기 아이라면 으레 나올 법한 욱한 성질도 없다. 납작 엎드려 잘못했다 빌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며 각서까지 쓴다. 문서—활자로 상대의 행동을 제약하는 수단인 각서는 보통 어른이 어른에게 구속력을 발휘하기 위해 받지 어른이 아이에게 받을 만한 물건이 아니다. 약속이라면 모를까 각서는 이상하다. 상당히 가혹하고 부당하기까지 느껴지는데 최유진은 익숙한듯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최유진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엄마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과 포기, 그리고 엄마를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이건 최유진이 마술을 하는 이유와도 이어진다.

마술은 예상을 비틀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넘어지는 척하면서 수정구슬을 풍선으로 바꾼다던지 못 맞춰야 당연한 카드를 맞춘다던지. 사람들은 흥미로운 장면에만 집중하지 밑작업은 눈치채지 못한다. 이건 마술사가 바라는 일이다. 만약 마술사가 하고자 하는 마술의 밑작업을 들키면 마술은 망한다. 고등학생 마술사는 화려한 눈속임으로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에게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린다. 최유진이 선보이는 일상 마술을 성공적이다. 누구도 최유진이 가진 아픔을 알지 못했다. 친구들은 관심도 없다. 하지만 이유진에게 들키고 만다.

최유진은 해왔던 대로 엄마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납작 엎드린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대로 이유진을 방에 밀어넣고 숨죽이라 말하지만 이유진은 물러나지 않는다. 친구의 엄마와 싸우고 친구를 데리고 집을 나간다. 이유진은 까닭 모를 폭력에서 도망치는 법을 알려준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못된 일에는 맞설줄 알아야 하는 것을. 그가 예전에 겪었던 것처럼(이건 필자의 상상이다). 이 방법이 최유진을 가정 폭력에서 구할 해결책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묵묵히 맞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길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최유진은 구원받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유진은 또다른 유진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세계에서 나간다. 멋진 이야기다.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최유진 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가지고 있다. 배하나는 이유진에 대한 연심을 보이고 싶지 않아하고 이유진은 최유진에 대한 마음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유진은 최유진의 주위를 맴돌며 엄청 관심을 보이지만 직접 드러내진 않는다. 그 마음이 우리가 평범하다 부르는 것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숨기고 싶은 마음은 ‘기침, 가난 그리고 사랑은 숨기지 못한다’는 튀르키예 속담처럼 결국 드러난다. 이유진은 최유진에게 풍선을 왜 그 여자에게 주었냐고 묻고 형들이 호시탐탐 너를 노렸다고 말하는 대사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무리해서 이유진이 최유진의 집에 간 것도 최유진이 숨기고 싶어하는 비밀을 알았고 그 속에 숨긴 아픔을 눈치챈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마술이 아닌 마술사를 바라보고 있었던 이유진만 알아볼 수 있었다.

‘유진이들’을 보면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황이 맞물리거나 스스로 드러내기도 한다. 자의든 타의든 비밀이 드러났다고 해서 큰일은 아니다. 또다른 세계로 나아간 것일 뿐이다. 최유진은 엄마에게서 조금씩 벗어날 마음이 생겼을 것이고 이유진은 최유진에게 한 발 더 다가갈 것이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유진이들’도 독자도 하물며 작가도 모를 것이다. 한 가지 바란다면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필자가 강박적으로 제목과 연관 지어 제멋대로 작품을 해석—이라 하기에 민망한—했지만 이것 말고도 짚고 싶은 부분이 많다. 고등학생이 가질 법한 감성적인 섬세한 마음이 충분히 드러나고 그 나이 특유의 이기적인 대화도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사실감이 있었다. 이준 작가님의 이전 작품도 마음을 섬세하게 다룬다고 느꼈는데 본작도 그러하다.

한 가지, 작품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인물들의 서사와 배경이었다. 최유진은 왜 마술을 시작하게 되었는지—필자가 멋대로 해석하긴 했지만— 어떻게 재즈바 ‘리아’에 흘러들어갔는지 재즈바를 찾는 손님들의 성향을 알고 있었는지 이유진은 고등학생이면서 바텐더 일을 하게 되었는지 최유진 못지 않게 쓰라린 과거가 있는지 리아는 이유진의 사정을 알고 고용했는지 최유진의 엄마는 아이에게 왜 그리 집착을 하는지 여자아이를 조심하라고 했으면서 각서에는 게이들과 어울리지 않겠다고 쓰게 했는지 등 작품만으로는 넘겨짚을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작품 설명 속 연작 소설들을 읽으면 알 수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전작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뒤에 더 이어질 소설들에서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기대된다.

(리아는 ‘자매의 탄생’과 ‘발광하는 여자친구’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작가님께서 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떠오르는 감정이 많아 마구마구 적었는데 너무 두서 없어 상당부분 덜어냈다. 지금도 엉성하지만 필자의 폭주는 이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 이만 감상을 마치려고 한다. 부족한 감상글이지만 많은 분들이 이 리뷰로 하여금 더 많은 분들이 읽고 감상을 나눴으면 좋겠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지만 혼자 알기엔 아쉬운 작품이다. 연작소설인 만큼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작가님께서 독자의 부족한 해석을 아량 넓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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