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옛날부터 동물들과 함께 삶을 공유했다. 방범용이든 농사용이든 식용이든 그 동물의 쓰임새가 무엇이든지 간에. 시간이 흘러 동물들의 노동력을 기계와 기술이 대신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동물들의 가치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바로 가축에서 가족으로 말이다. 단순히 노동력과 식량을 제공하던 존재에서 애정과 정서적 지지를 보내주는 존재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커져가는 중인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1/4는 반려동물과 함께한다고 하는 통계가 있을 정도니만큼.
소명에게도 복순이는 그렇게 소중하고 또 소중한 강아지다. 없으면 안되는 온전한 나의 가족.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복순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강아지가 아니다. 복슬복슬한 털 대신 매끈하고 차가운 피부, 한번 다치거나 하면 회복이 어려운 관절 대신 쉽게 갈아끼울 수 있는 관절의 소유자인 복순이는 바로 로봇개,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정의를 빌리자면 EB(Electronic Biotic)에 해당한다. 이상기후가 지속되면서 돌연변이 바이러스들이 포유동물들에게 널리 퍼지면서 많은 동물들이 멸종되거나 보호종으로 지정되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가축이자 반려동물인 개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개체수가 급감했으며, 이 와중에 EB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쇠퇴했다. 쇠퇴한 이유는 역시나 이상기후 때문. 이상기후 때문에 EB를 제작하는데 쓰일 부품이 어려워지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복순이를 찾아 헤메며 소명은 많은 생각을 한다.
“걔는 진짜 개야. 적어도 나한텐.”
“나는 아기는 이제 됐어. 복순이 있어서.”
수리할 부품을 전전하며 고물상을 뒤져내 냉각 장치에 들어갈 부품을 기어코 수명이 다해가는 제 EB에 끼워 넣는 사람들의 잘못인가, 아니면 정부가 에너지 절약과 기후 위기 대책을 내세우면서 노인정이며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 냉방 설비를 싹 빼버린 탓인가.
“시골이라고 텃세부리고 들쑤시던 사람들이랑 내 개 중에서 선택하라는 건 이상하잖아.”
고작 거 땜이 아니라고요. 고작 그거가 아니에요.
소명이 소설 속에서 했던 수많은 생각 중의 일부다. 다른 사람에겐 냉각 장치를 가동시킬 수 있는 부품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들 뭐 어떤가. 어쨌든 지금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며 시간을 보내는 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EB인 복순인데. 나라도 소명과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내 가족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간혹 있다 하더라도 극히 희귀한 경우이니만큼 뉴스를 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경우에도 살아생전 가족의 뜻이 남들을 돕겠다는 것에 있었을 경우이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내 가족을 희생시켜서 남을 돕는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소명이 주영의 집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결말은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구체적인 해석은 독자들에게 맡기는 방식의 결말이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소설에는 이런 결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보인다. 소명은 아직 답을 찾지 못했고, 복순이도 찾지 못했다. 만일 소명이 언젠가 해답을 찾는다면 복순이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상기후와 반려동물의 조합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