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몸에 여인의 얼굴을 한 괴물이 피눈물을 흘리네, 그 사연이 뭘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외자혈손전(外者血孫傳) (작가: 리리브,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9월, 조회 66

칠흑같이 새까만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여인의 얼굴을 한 뱀의 몸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대체로 바로 기절하거나 도주하려고 하다가 엎어져 역시 기절할 것이다. 이 소설 <외자혈손전>의 주인공 무명은 다르다. 그 여인이 무명을 내려다 보며 “가여워서 어찌할꼬…” 중얼거린 탓일까. 그 중얼대며 우는 여인의 눈에서 그야 말로 피 눈물이 흐른 탓일까. 무명은 여인을 가엾게 느끼며, 피로 온통 얼룩진 뺨을 어루만져 주고 싶어한다. 그 괴이한 여인이 기이하게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무명은 어떤 사람이기에 뱀 여인을 도리어 가엽게 여겼을까.

 

무명은 두 눈에서 피를 흘리며 흐느끼는 여인의 한 서린 얼굴을 꿈속에서 자꾸만 마주한다. 여인은 달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한다. 혼례일이 가까워질수록 꿈을 꾸는 일이 잦아졌다. 무명은 결국 혼례가 하루도 채 남지 않은 야심한 시각,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어둑한 자시의 숲속을 거니는 자신의 모습과 뱀의 몸에 여인의 얼굴을 한 채로 울던 기이한 것, 사방으로 들어차던 물줄기를 떠올리며 홀로 산길을 오르던 무명은 뱀을 발견한다.

 

여기까지 리뷰를 읽고 무슨 내용인가 궁금했다면 잠시 접어두고 소설을 바로 읽고 오시길.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흡입력 있는 문장력으로 단숨에 결말까지 다 읽고 여운을 만끽하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 테니까. 또, 잠시 경고하지만 뒷 이야기에는 스포일러가 살짝 담겨 있다. 아주 살짝이긴 하지만.

 

무명은 평화롭기 그지 없던 조선국 후기, 한 양반집 대감마님의 고명딸이다. 늦둥이로, 그것도 첩의 자신으로 태어난 아이에겐 이름이 없다. 이름이 아무런 뜻이 없는 무명(無名)이라면 설명이 끝난 게 아닐까. 산통을 못 이겨 명을 다 하는 바람에 여종의 젖을 먹고 큰 아이는 뒷산의 가장 낮은 산턱까지 나가봤을 뿐, 집밖으로도 나가본 일이 없다. 대감의 두 아들은 멧돼지 고기며, 구렁이 비늘이며 여러 산짐승들의 사체를 탐하지만, 무명은 고기 굽는 냄새조차 싫어했다. 덫에 걸려 죽어가는 산짐승들의 몰골이 끔찍해서였다.

 

먹기 싫어하는 고기 반찬은 먹어야만 했고, 글을 배울 기회는 빼앗겼으며, 여인의 도리를 강요 받다가 혼례날을 앞두고 산으로 오르는 길을 선택한 무명, 그녀는 그곳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3가지 과제를 부여 받는다. 청풍명월을 벗 삼아 자연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인 대감의 곳간에서 산짐승 고기를 빼다가 땅에 묻어야 하고, 마구잡이로 벗겨낸 산신님(호랑이)의 거죽을 빼어다가 숲속 나뭇가지에 걸어야 하며, 흰 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 소설 <외자혈손전>은 옛날 이야기(설화)의 기본적인 구성을 아주 잘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을 둘러싼 배경이 소개되고, 주인공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며,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만 ‘달콤한 과실’을 손에 넣게 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다만 하나 아쉬웠던 점은 분량 조절의 이유도 있겠지만, 3가지 과제를 이행하는 모습이 너무도 빠르게 보여졌다는 데 있다. 과제를 이행하다 보면 장애물을 만나기도 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인데 여기서는 짧은 서술로만 보여져서 아쉬웠다. 바로 이 과젱이 ‘비어’ 있고, 바로 혼례날로 시공간이 이동하여 무명이 대감을 징벌하는 스토리로 가다 보니 몰입력이 살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과거사의 이야기는 물론 중요하지만, 독자의 몰입감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3가지 과제를 이행하는 것을 조금 더 긴박감 있게, 보다 풍성하게 잘 풀어준 뒤에 무명의 어미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조금 더 흥미로웠을 거 같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 무명의 어미는 대감에게 어떠한 감정이었는지 조금 더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소설에서는 어미의 서사가 설명 형태로 나오는데, 무명의 어미는 한때 대감을 사모했던 걸로 보이나 어째서 그 영감을 사모할 수 있었는지 (소설 속에서는 별로 인 모습 밖에 없다…)도 조금 의아했다.

 

결말을 다 읽고 나면 한 서린 에너지가 잘 풀어진 거 같으면서도 앞의 2가지가 아쉬워서인지 조금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찝찝한 기분으로 무명에 대해 생각하도록 작가가 만들어둔 장인지도 모르겠다. 본래 뱀 이야기를 좋아하고 전통 설화를 애정하는 터라 신명나게 끝까지 읽었다. 으스스한 기분이 느껴지면서 무명의 어미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 묘사들이 좋았다. 무명에게 이 소설은 ‘해피 에버 에프터’의 결말이었을까. 마침표가 찍힌 곳에서 잠시간 머물렀다. 무명이 평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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