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MI를 하나 깔고 시작하자면. 저도 브릿G라는 플랫폼에 슬쩍 발을 담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눈의 셀키」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아람님의 다른 소설들도 좋아합니다. 「스트럴드 블록」,「캐시」, 「시간 여행자의 고충」 등등.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이 계신다면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눈의 셀키」인데, 얼마 전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읽어봤는데 역시나 멋진 소설이더군요.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감상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장르를 구현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일 겁니다. 보통 장르를 비슷한 성격의 소재, 설정,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창작물들을 묶는 카테고리, ‘하나의 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틀과 재료들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 주요한 구현 방식이 되겠습니다. 판타지를 예로 들자면. 기존의 것과는 살짝 결이 다른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다거나. 공주가 아닌 시녀를 주인공으로 삼는 식으로 비틀기를 시도하는 겁니다.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그러한 틀 자체를 소재로 삼아 메타픽션을 창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방식이 있을 겁니다. 개중에는 기존 틀의 활용보다는, 장르적인 색채를 오롯이 구현하는 데 힘을 집중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제가 「눈의 셀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문장의 힘으로 판타지를 구현한다는 것입니다.
얼어붙은 바닷가의 언덕 위에 마녀의 집이 있다고 했다. 사시사철 눈이 내리고 건장한 청년의 장딴지 두께의 얼음이 바다를 뒤덮고 있어 큰 배가 정박하지 못하는 고장. 그러나 일 년에 딱 한 달, 칼날처럼 몰아치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약해지는 시기가 있는 곳. 내륙에선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동쪽의 사람들이 여름 축제를 벌이는 동안, 빙하가 인간이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깨지고 뱃길이 열리는 곳의 언덕에 마녀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거대한 배였다. 강철로 된 선체는 작은 마을 하나를 집어삼킬 수 있을 크기였고 배가 물살을 가를 때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뿜어졌다. 매 순간순간 보통의 나무배는 낼 수 없는 굉음과 열기가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의 뱃머리에는 마을 하나가 1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의 철을 이용해 만든 날카로운 충각이 달려 있었다.
배는 강철 몸뚱이와 충각으로 얼음을 가르고 마을에 도착했다. 수세대 동안 열리지 않았던 얼음이 과자처럼 부서졌다. 배에서 역시 강철로 만든 다리가 내려와 육중한 소리와 함께 얼어붙은 대지를 디뎠다. 그리고 젊은 여자가 다리를 내려와 마을에 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안쪽땅 백작령의 군주였으며 국서의 사촌 동생이자 유리 궁전의 왕이 총애하는 조카로, 그녀의 몸에는 근친혼으로 켜켜이 쌓인 고귀한 피가 흘렀다.
풍부한 은유와 디테일을 갖춘, 호흡이 긴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판타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흔하게 마주하기 어려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3.
사실 형식이니 방식이니 하는 것들,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명확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요. 읽는 사람으로서는 그저 재미있으면 장땡입니다. 「눈의 셀키」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소설이 아름다운 문장에 그치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셀키라고 하는 바다의 정령을 놓고 벌이는 욕망과 파국의 서사입니다. 셀키는 평소에는 물개의 모습으로 있으나 뭍으로 올라올 때는 가죽을 벗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가죽을 벗은 셀키는 인간의 마음을 더없이 자극하는, 위험할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마늘과 향료의 향기가 올라오자 청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청년의 눈동자는 과연 바다처럼 푸르렀다. 그냥 단순한 푸른색이 아니었다. 푸른 빛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진해져, 눈 가장자리에서 넘실거리는 가장 청명할 때의 옅은 바다의 색깔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파도가 몰아치고 인간에게 자애롭지 않은 때의 빛으로 넘실거렸다. 정 가운데의 까만 동공은 밤바다의 소용돌이처럼 무자비한 검은색이었다. 마녀는 얼어붙어 청년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새파란 눈동자가, 마치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받으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마녀와, 강한 권세와 고귀한 혈통을 지닌 백작 여자는 모두 셀키를 원합니다. 여성은 욕망에 관해 수동적인 존재로 다루어지기 쉬우나, 이 소설에서는 두 여성 주인공이 욕망을 위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역전의 서사를 보여줍니다. 마녀는 가죽을 잃고 찾아온 셀키를 위험을 무릅쓴 채 숨겨놓고 돌봐줍니다. 사냥꾼들이 팔아넘긴 가죽을 입수한 백작 여자는 셀키를 찾기 위해 수 세기 동안 열리지 않은 얼음길을 열고 마을을 찾아옵니다.
셀키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이자,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자리한 아름다움입니다.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은 파멸로 이어질 뿐입니다. 아름다움은 애초에 소유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죽을 되찾아 바다로 돌아가는 게 셀키의 유일한 욕망인 것처럼요.
마녀와 백작 여자, 두 주인공은 같은 벽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대처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백작 여자는 계교로 셀키를 사로잡고 그를 구속하려 들고, 마녀는 바다짐승들에게 말을 전해 셀키를 구하고 바다로 돌려보내 주려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예정된 파국이 찾아옵니다. 씁쓸하고도 슬픈 이야기지만, 이 소설의 결말을 통해서 우리는 보다 덜 파멸적이고, 착취적이지 않은 욕망이 존중받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런 욕망을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진짜 답은 사랑이니까요. 그것이 더 오래된 답변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