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하승민 출판 작가의 <발끝이 바다에 닿으면>을 1화부터 49화까지 모두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목차
1. 머릿말
2. 고래
3. 티베트
4. 결어
1. 머릿말
안녕하세요. 2023년 9월 1일 기준으로 저는 하승민 출판 작가의 <발끝이 너에게 닿으면>을 1화부터 49화까지 전부 읽었습니다! 처음엔 브릿g에서 홍보하는 것을 보고 읽었는데, 끝까지 쭉 읽으니 감성적인 여운이 많이 남더라고요. 매화마다 댓글을 달았는데, 더 이상 댓글을 달 수 없는 것에 대한 아련함이 느껴집니다. 고래라는 소재와 티베트라는 소재를 어떻게 엮지? 이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었는데, 다 읽고나니 에브리띵 에브리원 올앳원스라는 영화처럼 모든 게 이어져있는 완전한 결말을 이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소설내용을 까먹기 전에 감상 리뷰를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재밌는 걸 저 혼자만 꿀단지처럼 쟁여놓을 수는 없지요! 좋은 건 다 같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2. 고래
고래는 포유강(哺乳綱) 고래목의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육상 포유류 과절목(메소닉스)의 근연종이 파키케투스, 암불로케투스, 로도케투스 등 반수생생물로의 진화체가 서서히 물속 생활을 하게 되다가 결국 완전히 물에 적응한 것이 고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중생활에 적응하여 뒷다리는 퇴화했으며, 앞지느러미가 앞다리이다. 털은 퇴화하였고 피부에는 두꺼운 지방층이 있습니다. 대개 4m~5m를 기준으로 작은 고래는 돌고래, 큰 것은 고래라 한니다. 강거두고래, 가두고래, 귀신고래, 대왕고래(흰수염고래), 돌고래, 밍크고래, 범고래, 부리고래, 상괭이, 일각고래, 참고래, 큰돌고래, 향유고래, 혹등고래, 흰돌고래 등 전 세계에 100여 종이 있지만, 대부분 멸종 위기에 처해 있어 국제적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1
인간을 능가하는 힘이나 인간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소유한 상위포식자 동물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회화와 문학에서 다양한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해양 생태계의 강자인 고래는 종에 따라 최대 30미터에 이르는 크기와 선박과 인명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으로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2 과거의 고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미지의 동물이었습니다. 중세 서양 문화권에서 고래는 ‘큰 물고기’ 혹은 ‘바다의 괴물’이라는 의미에서 케토스(Ketos)라고 불렸으며,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온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3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고래는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포함한 고문헌상 에서 ‘경어(鯨魚)’ 혹은 ‘큰 물고기(大魚)’로 기록되었습니다.
有大魚六尾, 自海乘潮入陽川浦, 浦傍民殺之, 聲如牛吼. 無鱗甲, 色正黑, 口在目邊, 鼻在項上.
(태종 5년 1월 20일)
큰 물고기 여섯 마리가 바다에서 밀물을 타고 양천포로 들어왔다. 양천포에 사는 백성들이 잡아 죽였는데 그 소리가 소 우는 것 같았다. 비늘이 없고 몸 빛깔은 까맣고 입은 눈가에 있고 코는 목덜미 위에 있었다.
『태종실록(太宗實錄)』 권 10
十五年, 春三月, 東海邊獲大魚, 有角, 其大盈車.
15년(416) 봄 3월에 동해 바닷가에서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뿔이 달렸고 그 크기가 수레에 가득 찰 정도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3 「新羅本紀 實聖 尼師今」
五月, 王都西南泗沘河, 大魚出死, 長三丈.
19년(659) 5월에 서울 서남쪽의 사비하에 큰 물고기가 나와 죽었는데 길이가 세 장(丈)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28 「百濟本紀 義慈王」
이런 고래의 어원으로 ‘골짜기[谷]에서 물을 뿜는 입구’ 또는 도교 관련 설화가 있습니다. 용왕에게 아홉 아들이 있는데요. 첫째는 비희(贔屭)이고, 둘째는 이문(螭吻)이며, 셋째는 포뢰(蒲牢), 넷째는 폐안(狴犴), 다섯째는 도철(饕餮), 여섯째는 공복(蚣蝮), 일곱째는 애자(睚眦), 여덟째는 산예(狻猊), 아홉째는 초도(椒圖)라고 합니다.4 이 중 셋째인 ‘포뢰’(蒲牢)는 바다에 사는 큰 생물을 무서워해서 그것만 나타나면 큰 소리로 울어대곤 했는데, 이렇게 소리 지르는 것을 좋아하여 종소리가 멀리울려 퍼지도록 포뢰를 종의 윗부분에 장식하게 되었다. 이 호명이 와전되어 포뢰가 고뢰로 변해 고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5
그렇지만, 고래가 마냥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인 것은 아닙니다. 고래를 사냥하거나 죽은 고래 사체에서 인간은 고기, 살, 뼈, 기름 등 많은 부산물을 얻습니다. 조선 후기 고래에 대한 기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고래 부산물의 종류와 이용법입니다. 18세기 이전에도 고래의 이용에 관한 기록이 있지만 대부분 간략했습니다. 이에 비해 18세기 이후부터는 기록에서는 고래의 사용법이 부위별로 상세해지며 직접 맛을 보기도 하고 기름의 양을 측정하기도 하며 부산물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습니다.6
而我國漁夫 無此技 一得沙上自死諒 則齒鬚筋骨 皆爲器用 皮肉熬之取油鯨之大者 得油數 百斛 利益一方.
우리나라 어부들은 [고래를 잡는] 기술은 없고 모래 위에 저절로 올라와서 죽은 고래를 한번 얻으면 이빨과 수염 심줄 뼈를 모두 도구로 쓴다. 껍질과 고깃살은 끓여서 기름을 얻는데 고래의 큰 것은 수백 곡(斛)의 기름을 얻으니 이득이 많다.
서유구, 『임원십육지』, 「전어지」. <무린류>
登其背而斧斸之, 皮深半尺如肥豬之膜, 內則白而腴, 如鷄肉焉, 烹之果美, 其皮皆油也
그 등에 올라 도끼로 잘라내니 가죽은 깊이만도 반 자가 되는 것이 살찐 돼지의 막 같고 속살은 하얗고 기름져 닭고기와 같았다. 삶아보니 과연 맛은 좋은데 그 껍질은 모두 기름이었다.
『백운필(白雲筆)』
3. 티베트
특이하게도 <발끝이 바다에 닿으면>에 등장하는 52헤르츠의 고래 ‘이드’는 커뮤니케이터가 해석한 바에 따르면 티베트어와 가장 유사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티베트는 어떤 곳인가요? 우선 티베트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으며, 중앙아시아에 고원지대에 위치했기에, 고래가 헤엄칠 수 있는 드넓은 바다가 없습니다! 소설 속에서 고래 이드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아는 지성체이지요. 그렇다면 이드와 소통하는 인간은 누구일까요? 그 인물은 바로 검은천막(빠랑쉐)에 거주하는 체텐 돌마라는 소녀입니다.
돌마는 티베트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소녀입니다. 1959년 이후부터 티베트 독립문제가 국제적으로 이슈화되었습니다. 중국정부는 13세기 원나라 때부터 티베트를 통치했기 때문에 중국의 티베트 통치는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티베트 망명정부는 중국의 티베트 통치는 강압적이며 1951년 <17개조 협의>가 체결된 후부터 통치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중국의 티베트 통치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1959년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지속적으로 논쟁의 쟁점이 되었고, 14대 달라이 라마가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얻게되자 더욱 관심을 받았습니다.7
중국국가통계국 자료에 의하면 2007년 말 기준으로 중국에 거주하는 전체 티베트인(藏族)은 약 541만 6천명입니다. 중국 내 전체 티베트인 인구의 약 50%가 티베트자치구에 거주합니다. 티베트인의 중국 내 거주 분포를 보면, 티베트자치구에 약 273만 6천명이 거주하며, 쓰촨, 간쑤, 칭하이(靑海), 윈난(雲南), 신지앙(新疆) 지역에 약 268만명이 분산되어 거주하고 있습니다8 1959년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여 ‘티베트망명정부’를 수립한지 20년 만에 달라이 라마와 중국정부는 처음으로 서로를 향하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티베트와 중국은 역사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양자의 접촉과 협상은 시기적으로 아래의 3단계의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 1단계(1978년~1985년)9
→ 1978년 12월 28일 덩샤오핑(=등소평,鄧小平)은 달라이 라마에게 접촉과 대화의 신호탄을 보내고 1970년 3월 12일에 정식으로 1차 협상을 가집니다.
→ 1979년 8월부터 1980년까지 중국정부는 달라이 라마가 파견한 참관단과 친척 방문단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 1981년 7월 달라이 라마의 개인 특사와 중국 정부의 총서기가 협상 책임자로 나왔고, 1982년 4월에 달라이 라마는 3인의 특사단을 중국에 보냈습니다.
→ 3인 특사단의 핵심 요구 사항은 대만처럼 일국양제(一國兩制) 시스템으로 티베트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중국정부는 이를 거부합니다.
→ 1984년 10월 달라이 라마는 다시 3인 특사단을 북경에 파견하여 티베트 문제에 대한 입장과 의지를 표명했고, 중국 정부는 요구를 받아들여서 지도자급 만남을 적극추진했지만 달라이 라마는 중국을 방문하지 않습니다.
☆ 이런 달라이 라마의 행보는 중국정부의 심기를 불쾌하게 만들어서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망명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고, 티베트 문제에 관한 어떤 접촉과 협상도 무기한 연기됩니다.
▷ 2단계(1986년~1992년)10
→ 매번 달라이 라마의 특사단과 관찰단 만이 내왕하고 대화를 해봐야 별반 진전이 없을 것임을 깨닫고, 달라이 라마와의 직접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 이러한 상황을 관망하던 달라이 라마는 1987년 돌연 국제적 행보를 감행합니다.
→ 1987년 9월 21일 미국 의회의‘티베트 인권문제 수정안’(제1777호 의안) 통과에 맞춰 미국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달라이라마는 중국 군대가 철수하고 티베트의 안전을 보장하는 전제하에 티베트의 정치적, 문화적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면 티베트는 그 대가로 중국의 주권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 즉 <티베트 5개 평화계획>(五點和平計畵)11을 발표한 것입니다.
→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를 홍콩과 대만과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정치적 연합’으로 해결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하였습니다.
→ 서방 언론들은 이것을 달라이 라마의 새로운 ‘중도노선(中間道路)’ 정책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 1989년 3월, 티베트 라싸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 중국정부는 이 사태를 망명정부에서 비밀리에 파견한 인사들이 주동하고 계획하였다고 공포하였습니다.
→ 달라이 라마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획득합니다.
→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달라이 라마는 중국을 향해 강력한 협상을 제안합니다.
☆ 중국정부는 천안문 사건과 라싸 폭동을 해결하기에 정신이 없어서, 중국은 접촉을 중단했으며 달라이 라마는 본격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의 관념(인권과 민주주의)과 구호에 호응합니다.
▷ 3단계(1993년~2008년)12
→ 달라이 라마는 1992년과 1993년 연속적으로 북경에 화해의 특사단을 파견했고 이때 특사단의 요구사항은 티베트의 ‘진정한 자치(眞正自治)’였습니다.
→ 그러나 협상은 티베트 구역 경계선의 인식의 차이에서 결렬됐습니다.13
→ 1993년, 1994년, 1995년 동안 달라이 라마는 미국을 계속 방문했으며 1994년엔 클린턴(Clinton)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공시키고 티베트문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데 성공합니다.14
→ 1997년, 달라이 라마는 대만을 방문하여 대만 정권의 수뇌부인 리덩휘이(李登輝) 총통과 국민당 주석인 롄잔(連戰)과의 만남을 성사시키며 국제여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15
→ 1997년 11월에 중국주석 강택민(江澤民)은 미국의 하버드대학 연설에서 티베트문제에 관하여 불변의 관점을 다시 한 번 주장합니다.16
→ 2002년 7월 망명정부의 가락돈주(嘉樂敦株)는 전격적으로 중국경내의 티베트지역을 방문하고 인도의 다람살라로 돌아와서 달라이 라마와 향후 일정을 조율했으며 2002년 9월 9일부터 9월 24일 동안 달라이 라마의 개인특사 자격으로 4인이 북경을 방문하게 됩니다.17
→ 2008년 3월 14일, 티베트 라싸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400여 명의 불교사원 라마승들의 반(反)중국 유세로 촉발된 시위는 라싸 시내를 넘어, 순식간에 사천, 감숙, 청해 등의 주변 티베트인 거주지로까지 번졌으며, 수도인 북경의 티베트 학생들도 촛불시위와 연좌농성으로 합세합니다.
→ 티베트 라싸 시위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의해 신속하게 진압됩니다.
→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일어난 3.14시위는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중국정부의 진압과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국제사회의 방관자적 모습으로 실패로 돌아갔으나 중국의 대 티베트정책이 여전히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 시위가 진압되자 티베트 망명정부는 2008년 6월 4일, 티베트 독립을 추구하지 않고 베이징올림픽을 지지하겠다는 삼동활불(三東仁波切)명의의 공식 확약서를 중국 지도부에 전달했습니다.
☆ 그러나 결국 중국과 티베트(中·藏) 간의 대화는 2008년 11월 6일 이후로 완전 결렬되었습니다.
4. 결어
티베트 독립과 고래가 엮인 아름다운 이야기는 49화에서 끝을 냅니다. 다시 읽어봐도 먹먹하고 가슴아린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결말에 대해서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미리 알고 있으면 좋은 배경지식 위주로 작성했습니다. 써놓고 보니 42매가 나왔는데… 소통과 치유, 언어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다가 이렇게 딴 길로 새는 리뷰를 작성해버렸습니다. 암튼 정말 좋은 소설입니다. 다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