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이 되면, 특히 장미덩쿨을 볼 때면 나는 한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담장을 칭칭 휘감고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붉은 장미들. 아스라하게 피어오르던 아지랑이. 그 사이로 들려오던 웅웅거리는 곤충의 날갯짓 소리. 붉게 부풀어오르던 손바닥과 화끈거리고 찌릿찌릿하던 통증, 그리고 울음소리, 경적소리와 뒤섞여 들리던 각종 소음들.
장미덩쿨을 구경하다 벌에 호되게 쏘였던 날의 기억이다. 다행히 별다른 쇼크는 없이 무사히 넘어갔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벌만 보면 종류와 크기가 어떻든지 슬며시 겁부터 집어먹는다. 물론 겉으로 티는 내진 않지만.
꽃가루를 묻히고 부지런히 이 꽃, 저 꽃을 넘나들며 꿀따기에 여념이 없는 벌들을 보고 있노라면 개미와 함께 부지런함을 생명체의 모양으로 빚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네들은 쉼없이 날아다닌다. 꿀을 모으기 위해 하루에 200km 이상을 날아다닌다는 조사 결과도 있을 만큼.
그러나 요새는 그런 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봄철부터 시작해 겨울이 오기 전까지 늘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꿀을 모으고 꽃들의 수분을 도와주던 작고 부지런한 일꾼들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해마다 기승을 부리는 탓에 벌들의 개체 수가 급감하거나 멸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내가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왕벌의 비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벌들의 개체 수가 급감하기에, 어떻게든 살려보려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AI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공지능이 화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품 묘사가 서정적인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차별화된 점이 아닐까. 루트의 시선을 따라갈수록 나조차도 괜히 다시금 벌들이 그리워지곤 했으니까.
결국 돔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루트는 더 이상 명령을 수행할 벌들은 물론이고, 자신이 동력으로 삼을 에너지원조차 확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마지막 선택을 한다.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떠오른 건 왜일까.
결말까지 작품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척이나 아련하고 서정적이어서 읽는 내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매해 찾아오던 작고 부지런한 일꾼들이 다시금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모습을 언젠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