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함과 흥미로움을 함께. 감상

대상작품: 발광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잘난척사과, 23년 6월, 조회 28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계속해서 같은 것만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편식이 몸에 안 좋다는 건 상식인만큼 SF 외에도 다른 장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도 게시판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얼마 전 서평 했던 미스터리 작품이 떠오르기에 비슷한 부류가 없을까 해서 찾다 보니 자극적인 제목의 작품을 하나 발견했다.

‘발광’은 의문의 연쇄 자살 사건에 얽힌 두 명의 주인공이 범인을 잡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인데 여타 작품들보다 시놉시스를 더 많이 까발리기가 곤란하다. 작품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괜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이다.

극의 초반부터 강렬하게 독자들의 신경을 몰아치는 게 인상적이다. 자살이라는 행위가 주는 어두운 분위기에 흡사 슬래셔 무비와 같은 무자비한 자살 방법의 묘사 따위가 자극적인 냄새를 물씬 풍겨댄다. 덕분에 초반부터 몰입감이 뛰어나고 이러한 템포를 잘 조절하며 끝까지 막힘없이 달려간다.

조금 읽다 보니 두 주인공인 다운과 지운은 작명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별다른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굳이 운으로 끝나는 어감이 비슷한 명칭으로 인해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초래한다.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당연히 헷갈림이 줄어들지만 그런데도 계속해서 거슬린다. 다 읽고보니 작가는 일종의 언어적 유희와 작중 캐릭터적 이유(라고 생각되는)를 위해 그러한 작명을 선택한 듯한데 그 순간의 재미와 약간의 의미는 있겠지만 글의 전반적인 가독성을 해치고 있다는 느낌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굳이? 라는 의문이 든다.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 혼자일지도.

사건의 진행이 매우 흥미롭고 쓸데없는 서사를 최대한 줄이면서 빠르게 전개되는 내용이 극의 흐름을 처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다만 캐릭터의 설정이 묘하게 초반과 중반 이후가 이유 없이 조금 달라지는 느낌인데 개연성이 떨어지게 느껴져 아쉬움이 살짝 든다. 하지만 극의 흥미로운 전개에 파묻혀 크게 부각되지 않고 흘러가버리기에 나쁘지 않았다.

500매 내외의 중단편에 속하기 때문에 복잡한 트릭 묘사나 장대한 서사 같은 건 없지만 현실에서 겪어봤을 법한 상황들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기에 그 현실감에서 오는 섬뜩함이 예사롭지 않다. 더불어 작가가 우리네 삶에서 종종 겪거나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이기적인 인간 군상 따위를 가감 없이 드러내어 독자가 설득력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꽤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했지만, 범인을 추리하는 데 역점을 둔 작품도 아니고, 트릭의 파훼에 몰두하는 작품도 아닌, 이야기 그 자체가 재미있는 작품이다. 제목에 대한 것도 그렇고, 작명에 대한 것도 그렇고 작가가 언어유희에 대한 욕망만 조금 자제한다면 좀 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을 끝으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본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감을 맺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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