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과 비범함의 사이 그 어디쯤에..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천국의 사다리 (작가: 잠곤, 작품정보)
리뷰어: 잘난척사과, 23년 6월, 조회 36

출판 작가가 아님에도 가끔 아마추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뛰어난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이번에 소개할 -천국의 사다리- 가 바로 그런 카테고리에 슬쩍 발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의 서사가 굉장한 것도 아니고 문체가 화려하거나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반전 요소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뛰어남’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인류로부터 고립된 채 섬의 주민들만으로 40년 동안 자생해 온 하와이의 현재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억지스러움 없이 사실적으로 독자들 앞에 펼쳐내고 있다. 무엇인가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실제로 이런 곳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만큼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 꽤 흥미롭다. 여행기를 쓰듯이 서술된 문장들과 그 문장에 담겨 있는 생동한 묘사와 디테일의 힘이 아닐까 한다.

인류가 멸망을 겪은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본 작품은 인류 멸종의 시기가 도래한다면 한 번쯤 고심해 볼 법한 주제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오래된 질문에서부터 좀 더 깊이감 있는 소재들을 건드리고 있다. 아쉽게도 앞서 전개에 비해 결론 부분이 지나치게 나이브한 느낌이 드는 점이 살짝 불만이었는데 이는 아마도 비뚤어진 본인의 취향 탓에 보는 눈도 지나치게 굴곡져서 그런가 보다.

글을 읽으며 감탄했던 부분이 있는데, 마치 출판 소설에서 봄 직한 잘 정돈된 문체다. 현상이나 사물 묘사에 군더더기가 거의 없고 호흡이 적당하다. 문장의 길이 조절이 능숙하고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이나 어색한 대화체 같은 부분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캐릭터가 겪게 되는 감정 곡선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때도 능숙함이 보여서 읽다 보면 어딘가의 웹 플랫폼에서 유료 연재되고 있는 글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대부분 그런 글들은 작가가 쓴 글을 담당자들이 상당히 다듬어 올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도 그런 손길을 거친 것이 아닐까 생각될만큼 잘 마무리되어 있다. 조금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일단 본인의 첫 인상은 그러했다.

담담하게 진행되지만, 현지에서 직접 경험하는듯한 이야기 전개는 독자를 설득하는 힘이 있다. 탄탄한 전개 위에 작가는 처음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일관되게 강약을 조절하며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최근에 읽어본 아포칼립스 소재의 글 중에서 가장 밝은 느낌의 글이 아닐까 하는데 그 속에 담긴 페이소스는 절대 만만치 않은 추악함과 어두움을 감추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뉘앙스를 따지자면 아이작 아시모프 계열보다는 아서 C 클라크 쪽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글의 주제나 반전 요소들은 사실 아포칼립스 장르나 SF 관련 장르를 미디어로 많이 접한 이들이라면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는 부분들이고 작가 역시 글의 여기저기에 독자들을 위한 힌트들을 다양하게 넣어둔지라 그러한 면에서 놀라운 글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읽는 재미가 있는 글이었다. 비록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볼 만큼의 매력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한번 제대로 정독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멋진 글이라는 말로 맺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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