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순장인은 누구를 위하여 꿈을 꾸는가 공모(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공모채택

대상작품: 사이버 순장 (작가: 느메메, 작품정보)
리뷰어: 기다리는 종이, 23년 6월, 조회 47

리뷰에 앞서, 여기서 다루는 글은 짧은 단편이기 때문에 제 글을 읽는 것보다 소설을 먼저 읽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사이버 순장’ 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주인공은 ‘실제로’ 순장된 상태입니다. 즉 그는 ‘순장인’ 이죠. 순장인은 이미 죽어버린 조선의 황제와 같이 묻힌 상태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길고 긴 잠에 빠졌다 막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간단한 도입부지만, 그 세월이 ‘미끄러운 빙하를 오르면서 보냈다’ 라고 표현된다는 것도 정말 감탄하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빙하를 오르던 순장인은 이내 정신을 차리게 되고, 순장인의 가족들은 카메라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봅니다. 가족들은 순장인을 구하고자 하지만, 순장인이 있는 곳은 죽은 황제의 무덤으로, 우주 공간에 격리되어 그 위치조차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안드로이드들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파업 중이죠.

이처럼, 이 소설은 순장이라는 아주 전근대적 소재를 SF라는 아주 미래적인 장르와 맛깔나게 섞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도입부를 통해 독자가 거의 곧바로 인식하게 되면서, 소설이 아주 흥미로워집니다.

왜 산 사람이 우주 공간에서 죽은 황제와 함께 묻히게 되었는지, 왜 황제의 능이 우주공간에 띄워져 있는지, 그리고 왜 순장인이 4년만에 깨어나게 되었는지가 짧게 설명됩니다.

실제 한반도에서 순장은 삼국시대를 지나고 나서는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장면들은 정말 모순적이게도 SF적이면서 유교적이고, 또 원시적입니다. 순장인의 누이는 안드로이드 의체를 통해 순장인을 도우려 하지만, 준비되어 있어야 할 ‘제사 음식’ – 마땅히 마련되어 있어야 할 수액 – 들이 착복된 탓에 순장인의 건강을 회복시키지 못합니다. 그 사이 지상의 관료들은 순장인의 처리를 두고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순장인보다는 상을 치를 기간에 대한 논의죠. 최근 5년상으로 기간을 합의하였으나 그 명령이 능에 전달되지 못한 바람에, 4년만에 순장인이 깨어났으므로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지, 그리고 상을 치를 기간을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4년만에 능을 귀환시킬 것인지.

그러던 중, 관리 하나가 ‘4년은 이미 하루 지났다.’ 고 발언하고, 회의는 해산됩니다. 어찌 보면 순장인을 위하는 것도 같지만, 실제로 관리들의 관심사는 순장인이 아닌 상을 치르는 기간 그 자체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아주 좋은 장면입니다.

그리고 소설은 한 번 더 강하게 달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인공지능 대원군이 나타난 것이죠. 황제는 이미 죽어버렸지만 황제의 모습, 황제의 목소리, 황제의 생각은 이미 네트워크 내에 충분히 존재하고 있었고, 죽어버린 전 황제는 그것들을 긁어모아서, 조상신이라는 자신의 권위와 합쳐서 자신이 전 황제와 동일하다는 ‘연속성’ 을 주장합니다. 감히 그 말에 반박하는 이가 없었고, 오직 현 황제만이 그를 견제할 뿐이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공지능 대원군은 자신의 진짜 영토, 즉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사후세계를 공유할 부하를 늘리는 데 집중할 뿐이었죠.

그리고 순장인의 어머니가 그 ‘대원군’ 에게 탄원합니다. 함께 순장된 자신의 아들을 부디 사후세계의 일원으로 받아 달라고.

이 부분도 정말 많은 것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이 소설 내 조선에서는, 순장이라는 전근대적이고 인명 경시적인 풍습이, 약간 개선되어 묻힌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같이 묻힌 무덤의 주인은 그것을 좋게 보지 않았던 거죠. 분명히, 유교적 관점이나 사회 전체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멀쩡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보다는 살려내서 돌려보내는 것이 더 옳은 길이겠지만, 무덤의 주인에게는 기분 나쁘고 가짜 충성을 바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순장인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올 길 없는 순장인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사용하기 위해 대원군에게 명예를 간청합니다.

이 시점에서, 순장이라는 풍습은 이전의 상태를 뛰어넘어, 정말로 SF적인 무언가로 진화합니다.

역사 속의 순장이 단순히 사람들을 왕과 함께 묻어 죽이는 것이었다면, 지금 소설 속 조선에서의 순장은 함께 묻힌다는 명분만 남기고 실제 사람들은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인공지능 대원군과 그가 만든 사후세계가 등장하고 순장인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제발 사후세계의 일원으로 받아 달라고 청하면서, 순장이 다시금 죽음과 이어지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원시적인 순장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 순장은 죽은 황제가 보장하는 사후 세계가 아주 분명하게 존재하며 약속된다는 점입니다.

대원군은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를 달라는 어머니의 간원에 만족해하고, 순장인은 천천히 빙하 구덩이로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인공, ‘순장인’은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만약 그가 그 사후세계에서 깨어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소설 내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는 죽은 분과 함께 묻히려고 상을 치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죽으려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살러 들어간 것이고, 어떻게 보면 함께 묻힌 선대 황제( 사이버-대원군 )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어차피 그는 죽은 사람이고, 자신은 살아서 나갈 사람이니까요. 그가 순장된 것은 사이버 대원군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가족을 위해서이고, 더 나아가서 그가 믿은 현 제도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깐의 순장 후 다시 살아서 가족에게 돌아가는 삶 말이죠.

하지만 계획이 꼬여 버렸고, 순장인은 죽은 사람이 되어 그 선대 황제와 영원히 사후세계에서 살아가야 될 운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원래는 가짜로 묻힌 뒤 현실 세계로 살아돌아왔어야 할 순장인은, 진짜로 묻히게 되었고 가상 세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냥 순장당해 죽은 것이 아닌, 사후세계로 초대받았으니 정말 글의 제목대로, ‘사이버 순장’ 을 당하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순장인은 어떤 꿈을 꾸게 될까요. 빙하의 꿈을 꾸던 그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오색빛깔에 파묻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처음 살아 돌아왔던 궁녀처럼 ‘최초의 순장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후세계에서 다른 구성원들의 존경과, 사이버 대원군의 총애를 받게 될까요?

그는 자신을 죽게 두지 않고 사후세계로 데려와 준 사이버-대원군에게 고마움을 표시할까요? 아니면 죽지 못하게 한 그를 원망할까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찌 보면 우리의 순장인이 따른 것은 선대 황제, 즉 사이버-대원군이 아니라 지금 있는 살아 있는 황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이버-대원군과 살아 있는 황제 사이에 더 큰 분쟁이 일어난다면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할까요? 순장인은 사이버 사후세계에 있지만,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순장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요? 죽은 황제를 지지하는 삿된 무리라고 손가락질 받지는 않을까요?

여러 모로, 정말 유교적이면서, 전근대적인데도, SF 그 자체를 잘 담아낸 좋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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