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옛날과는 달리 기대수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금,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들 은퇴 후의 삶, 제 2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바로 건강이라 할 수 있겠다. 어딘가 아프거나 신체 일부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과연 노년의 삶을 즐길 수 있을까? 젊어서도 건강하지 못하면 사는 것이 힘든 법인데.
우스갯소리로 ‘100세 시대에 눈이나 이, 관절 같은 신체 일부는 정기적으로 새 것으로 바꿔달아야 하는 거 아닌지’라는 농담을 친구들이랑 주고받을 때도 있었는데, 이 작품은 바로 그런 농담이 현실이 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를 보여준다.
‘나’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찌 보면 이상향에 가까운 세상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화가 진행되어 기능이 떨어진 신체 부위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가며 항상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니, 이렇게나 매력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세상은 없었다. 관절과 눈이 건강한 편이 아닌 나로서는 소설을 읽으면서 당장이라도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신체 부위를 당장 교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삐걱거리고 뻣뻣한 낡은 관절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새 걸로 바꾸어 달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나’는 뇌를 제외한 다른 장기들을 모두 인공장기로 교체했으며, 이제는 본인의 뇌도 인공뇌로 교체하는 걸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 외에는 일상을 영위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역사학을 가르치는 현역 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증손녀까지 돌보는 왕성한 행동력을 자랑한다. 예전에 교체했던 인공장기들의 수명이 다해가는 시기라 약간의 노이즈와 배터리 용량 부족같은 사소한(?) 문제를 겪고 있긴 하지만.
작중에서 보여주는 ‘나’는 상당히 완고한 인물이다. 자신의 연구방식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낙싱의 연구 태도를 문제로 본다거나, 유기농 식재료가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보탬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나가 졸라도 펭귄잼을 건네주지 않거나, 보육로봇을 믿지 않기에 직접 예나를 양육한다거나, 드론 이동은 위험하니 자동차만 타고 이동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심지어는 신체를 직업에 맞게 편리하게 개조한 개조인간을 보며 극도로 불쾌감을 느끼기조차 한다.
‘나’는 문명의 이기는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옛 방식을 고집하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묘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장기만 바꿔 끼우면 영생을 살 수 있는 이 사회에서 뇌를 교체하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하는. ‘나’는 백도어 프로그램이 인공뇌에 설치되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슬 인공뇌 교체 여부를 결정해야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예나의 구식이라는 불평불만, 제자 낙싱의 연구주제 변경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지는데, 여기서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된다. 정확하게는 쓰러진 이후 낙싱의 연구 방법을 따라하면서가 되겠지만.
낙싱의 연구 방법은 ‘나’의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게 만들고, 생각할 화두를 던져주었다.
왜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실행해 왔던 것들이 모두 틀린 게 되었을까?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오래 전부터 맞는다고 믿었던 것들, 아니 정말로 오래 전에는 맞았던 것들이 지금은 틀린 게 된 것 같다. 세월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했는데도 나는 타성에 젖어 변하지 않고 옛날대로 살고 있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었던 방식이 이제는 구시대의 것이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드디어 결심을 굳힌다. 인공뇌 이식이 아닌 존엄사를 하겠다는 결심을.
사람들에겐 관성이라는 게 있다. 과거에 해오던 대로 미래에도 그대로 하겠다는 습성인데, 꼭 이것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어떻게보면 가장 안전한 선택지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로운 방식대로 바꿀 필요도 없고. 이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커진다. 나이가 든다는 이야기는 가진 것, 지켜야 할 것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며 사람은 이럴 때 본능적으로 안전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여기서 안전한 길이란? 바로 과거를 답습하는 것, 즉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특히 드론 사고로 가족을 잃은 ‘나’는 더더욱 보수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나이가 들어도 유연하게 사고를 바꾸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평생 학문을 연구해 온 ‘나’가 과연 쉽게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더욱이 과거를 비추는 역사라는 학문을 연구해왔는데? (교수라는 직업, 그 중에서도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점은 ‘나’의 완고하고 보수적인 모습을 암시하는 장치라 생각해보아도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세상에서 보수적인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자신의 아집이라는 것을 인정한 ‘나’는 더이상 생명을 유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 된 배터리는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듯 내가 옳았던 시절이 다 된 이 고집쟁이 늙은이는 낙싱같은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인류가 발전한다. 그래야 건휘와 예나가 지금보다 더 발전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깨달음을 얻은 ‘나’의 독백이다. 더이상 삶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노학자가 자신의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려는 마지막 노력인 것이다. 죽음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본인의 한계를 인정하고 깔끔하게 죽음을 선택한 ‘나’의 결정에 존경을 표한다. 제목의 <배터리를 교체해 주세요>에서 배터리란 인공 장기의 배터리를 말하는 것도 있겠지만, 노인들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장수의 시대에서 어떻게 ‘배터리’가 교체되는지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