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도 복직할 수 있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탄실직 (작가: Mik,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3년 4월, 조회 44

‘오늘도 사탄 실직’

 

언제부터인지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는 밈(meme)이다. 악의 기원이자 집합체였던 사탄을 직장에 다니게 하는 것으로 모자라 순식간에 실업자로 만들어 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유행어는 흔히 상상하기 힘든 수위로 잔인하게 행동하는 인간을 빗댈 때 쓰인다. 악마보다 무섭고 귀신도 잡아가지 않을 만한 사람들. 세상에 저렇게까지 악할 수 있을까 싶은 이들이 저지르는 일은 여전히 우리 주변과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종교와 신의 영역을 이성과 과학이 설명하기 시작한 이후, 영적인 모든 것은 위상의 변화를 겪는 중이다. 인간의 경계 밖의 것, 절대적인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대중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최근 신, 저승사자, 악마, 사후세계의 이미지가 신화적 콘텐츠에 삽입되고 가공됨에 따라 그 내용은 더욱 현대적이고도 다양해졌다. 대표적인 예로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웹툰 《신과 함께》를 들 수 있다. 저승차사의 복장이 말끔한 양복이거나 현대식이라는 점, 인간의 영혼이 무사히 49일간의 재판을 거쳐 환생하도록 돕는 게 다름 아닌 변호사라는 점 등은 이전의 신비하고도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던 사후관을 좀 더 친근하게 만든다.

지옥과 무시무시한 저승사자가 가득하던 저승이 실은 체계가 잘 짜인 일종의 재판소와 같다면 사탄이 직장에 다니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하루가 다르게 잔학무도한 사건이 뉴스로 줄줄이 흘러나오는 세상에서 어쩌면 ‘악’이라는 최상위급 존재는 빛이 바래고 있는지 모른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고, 그 고통을 조롱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차단하는 사람들. 감정과 감정 사이에 세워진 벽은 소통을 차단하고 자극만을 남긴 채 타인의 삶을 여과하고 있다. 익명의 게시판에 올라오는 고민과 분노, 슬픔과 괴로움은 그저 수위로 조회수가 매겨지고 발 빠른 누군가는 그것을 조각조각 잘라 붙이는 것만으로도 명성을 얻는다.

오늘도 사탄이 혀를 내두를 만한 사건이 ‘사탄 실직’이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채 공유된다. 그것을 보며 시시덕거리는 당신에게 찾아온 누군가. 머리에는 정교하게 제작된 까마귀 탈 같은 것을 쓰고 있다. 왠지 그것이 진짜 까마귀머리처럼 보일 즈음, 그가 가만히 자신의 명함을 내민다. 앞뒤로 대충 살펴보니 어느 회사의 과장인 듯한데, 어리둥절한 당신에게 그는 침울하게 말한다.

 

 

실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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