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헛소리 가득한 리뷰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짐승 (작가: 붕붕, 작품정보)
리뷰어: 소금달, 23년 4월, 조회 56

박경리의 [토지]에 성환 할매라는 인물이 나온다. 젊어서 ‘석이네’로 불린 이 인물의 일생은 기구하기 짝이 없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남편이 친일적인 지주놈의 무고로 총에 맞아 죽는다. 그 바람에 소작하던 땅까지 떼이고 그야말로 무일푼 거지신세가 되지만 남매를 악착같이 키운다.

힘들게 키운 아들놈(석이)은 남편 죽인 지주 못지 않게 못된 여자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작중 최강 악녀라 할만한 이 여자는 독립운동하는 제 남편을 내연남인 형사에게 고발해 버린다. 할 수 없이 석이는 모친을 떠나 중국으로 간다.

며느리가 버리고 간 두 남매는 또 석이네 몫이다. 이제 성환 할매라 불리는 여인은 생사불명인 아들을 그리며 고생 고생으로 손주들을 키운다. 그러나 손자는 학도병에 끌려가게 되고 가뜩이나 쇠약한 몸에 충격을 받은 할매는 눈이 멀고 만다.

‘짐승’ 리뷰에 웬 딴 소설 얘기가 이리 길어? 라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변명하자면, 내가 이 군상극에서 완전 엉뚱한 인물에 확 꽂혀 버렸기 때문이다.

도미애, 도미옥, 장근덕, 오봉구, 최준, 이진수 등 맛깔나는 인물들이 한 가득인 이야기에서 내 눈길을 끈 건 엉뚱하게도 한 할머니였다.

내가 이 인물에 확 꽂힌 것은 이진수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였다. 웬만한 성인 남자도 위압감을 느낄만한 체구와 분위기의 이진수건만 그녀는 조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다소 거칠기까지 한 이진수의 행동에도 피하거나 도망치거나 굴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궁지에 몰린 늙은 암사자처럼 맹렬한 적의를 드러낸다.

그런 그녀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명줄인 돈을 잃지 않기 위한 처절함? 끈질기게 그녀 생에 달라붙고 있는, 양육해야만 하는 혈육에 대한 보호본능? 직감적인 생존 위협에 대한 반발? 무엇이 되었든 이진수를 향해 으르렁 대는 그녀의 모습이, 내게는 작중 그 어떤 인물보다도 생존 본능에 충실한 ‘짐승’같이 느껴져 인상깊었다. 그리하여 이 ‘엉뚱하고 헛소리 한가득인’ 리뷰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어쩌면, 비중이 크지 않은 등장인물 마저도 글 전체 분위기를 지원하게끔 고도로 설계된 작가님의 내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리뷰를 끝내가며 급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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