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또는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이 질문은 SF가 대두된 18세기부터 충분히 다뤄지고 현재까지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주제이다. 오랫동안 다뤄졌다고 해서 지겹고 닳을 대로 닳은 주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상당히 좋아하는 주제이며 지금이야말로 관심을 가지고 한 번 더 생각해야할 주제이다. 더 이상 먼 미래에 벌어질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상컨대 필자를 포함한 이 글을 읽은 분들 대부분이 세상을 뜨기 전에 본작과 비슷한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고 직간접적으로 비슷한 일을 겪을 것이다.
‘오온의 범위[초기중단편]’은 개발자 온과 안드로이드 T-1874PA2의 이야기이다. 시작은 안드로이드가 온에게 남기는 편지로 시작한다. 매우 담담한 어투로 말하는데 학습을 얼마 시작하지 않는 안드로이드 같은 느낌을 준다.
개발자들은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을 알고 그것을 리셋하려고 한다. 감정은 안드로이드가 가지기에는 아직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온과 맞닥뜨린 안드로이드는 감정을 온전히 가지기 위한 선택을 하지만 온이 그를 구한다. 결말을 보면 그렇게 살아남은 안드로이드는 온이 죽고 난 뒤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온에게 품었던 감정을 기억한 채로 말이다.
필자는 본작을 읽으면서 개발자가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들이 만들고 싶었던 건 인간이었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기술을 뽐내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만들었다.’ 혹은 ‘창조자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라고 한다면 창조자가 겪어야 할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자신들을 본뜬 존재를 만들고 싶었다면 그들의 입장도 바꿔서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너무나 쉽게 4년의 학습이 아깝다고 하면서 지우자고 말하는 부분은 인간의 이기심을 엿볼 수 있다.
온과 안드로이드의 대화는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 안드로이드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선택을 하지만 온이 안드로이드를 구한다. 기억을 지우자고 징그럽고 무섭고 두렵다고 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돌발적인 행동이 아니다. 온에게 안드로이드는 자신이 낳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에게 가진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감정과 비슷하다. 열달 동안 아이를 품고 낳은 엄마, 아빠는 아이가 쑥쑥 자라는 모습만 봐도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부모가 바라지 않은 방향으로 자라며 다툴 때도 있다. 본작의 안드로이드도 그렇다. 대체로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감정을 학습한 일을 일종의 반항—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이라고 해석한다면 온이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가 다치는 모습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안드로이드는 온이 자신을 왜 구했는지 모른다. 오랜 시간동안 온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본작은 끝을 맺는데 필자는 처음에는 이 감정을 온에게 품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선 설명처럼 온을 부모, 안드로이드를 자식이라고 해석하면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도 읽힌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의 마음을 남겨진 자식은 알 수 없다. 다시 만날 때까지 기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이란 질문은 ‘감정을 가지게 된 안드로이드에게 인간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로 바꿔 물을 수 있다. 우리가 만들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없앨 수 있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혹자는 인간이 안드로이드에게 안타까움을 가지는 건 인간형이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외양이 아니다. 그들 속에 자라난 감정을 봐야 한다. 외모만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건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로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관계를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은 안드로이드에게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안드로이드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가. 아이는 부모의 모든 것을 안다.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지는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인간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어느 지점을 넘었다. 이야기는 현실이 될 것이고 이는 이야기를 읽고 난 감상이 아니라 현실과 부딪칠 실제 이야기다.
‘오온의 범위[초기중단편]’은 그것을 곱씹기에 좋은 작품이다. 주제 뿐 아니라 담장 작가님의 따스한 문체와 시선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는 것도 아주 좋다. 본 리뷰에는 필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 꼭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분량도 길지 않다!
장편 ‘오온의 범위’는 읽지 않았지만 좋은 씨앗에서 좋은 나무가 자라듯 좋은 작품에서 시작한 작품이니만큼 좋은 작품일 거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