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이 없는 곳, 무별촌.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주인공은 모종의 사건으로 동생을 잃은 뒤 죄책감에 힘들어하다, 남편의 권유로 치유공동체 무별촌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불가해한 그곳의 생활방식과 규칙에 반감을 품고 떠날 뜻도 비치지만 주인공이 흔들릴때마다 ‘안내자’가 나타나 주인공을 이끌고, 결국 주인공은 누구보다 빨리 그곳에 적응해나간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을 통해 결국 무별촌과 주인공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스포일러를 예방하면서 써야 하는 줄거리라 이토록 두루뭉술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길. 궁금하시면 이야기를 (고맙게도 모두 무료다!)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아래부터는 소설 속 중요한 내용들이 스포되므로 싫으신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으시고 소설로 뛰어드시길 권한다.
처음 동생이 흡혈귀에 물려 죽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 뭔가 팍 김이 새는 기분이 들었다. 또 흡혈귀야? 몇백년이나 살아 교활한 지식 + 닳고 닳은 마음을 지닌 무적의 괴물. 이후 이 녀석이 사방팔방 사람을 물어죽이는 뻔한 전개가 나올까봐 읽기도 전에 지치는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 배반감이 들었다. 글은 너무나 건조하고 담담하며 사실적인데, 이 현실적인 분위기에 갑자기 흡혈귀라고? 그 단어가 소설이 내뿜는 공기랑 너무도 어울리지 않아 이질감이 컸다. 흡혈귀라니, 니가 왜 여기서 나와? 거부감을 눌러참고 계속 읽어나가니, 다행히 글은 계속 다큐나 르포같은 현실감을 유지해 주었다. 공동체 안의 사람임을 특정짓는 조금은 다른 외양, 기존 가족과의 해체를 요구하는 생활방식, 집단 세뇌같은 멘트, 무언의 압박이 가해지는 고백식 등은 낯섦과 기괴함으로 가득하다. 도망쳐! 굳이 주인공의 심리에 대한 서술이 아니더라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속삭이게 된다. 그만큼 흡입력이 좋은 것이리라. 그러나 처음 거부감을 보이던 주인공은 일종의 강력한 체험을 맞이한 후 입장을 180도 달리해서 무별촌을 받아들이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수용한다. 처음 ‘가족’의 한 명에서 ‘안내자’로 지위가 오른 뒤에는 ‘지도자’를 만나고 벽화를 그리는 영광까지 얻게 되지만, 새로운 가족의 등장과 그녀의 사라짐으로 인해 주인공은 다시 한번 변곡점을 맞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마주한 그녀는 자멸하는 무별촌에서 간신히 탈출한다. 12화를 읽을 때, 왜 흡혈귀야? 했던 질문의 답을 찾았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누군가의 목구멍에 이빨을 꽂아 넣는 것만이 흡혈귀는 아니다. 움직이는 육신을 가진 것만이 흡혈귀가 아니다.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남의 노력을, 희생을, 존엄을 빨아 제 배를 불리는 것들은 모두 흡혈귀다. 그것은 대기업이 될 수도 있고, 정치권력이 될 수 있고, 언론이 될 수도 있고, 너도 될 수 있고, 나도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무별촌 입소자들은 대부분 ‘흡혈귀’에 가족을 잃었다. 왜 모든 악행은 흡혈귀 짓인가? 그 답이 쉽고 편하니까. 모든 원망은 뚜렷한 형체와 대상을 가진 누군가에게 몰아주고, 변할 수 없는 절대 악에게 죄책감 없이 실컷 몰아주고, 나머지는 그저 평안과 안도를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쉼없이 ‘다 지나갔습니다’를 외면서 평안을 갈구한다. 그러나 실제는 어떠한가? 그들이 찾은 평안은 진짜일까? 흡혈귀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그들은 그러나 흡혈귀가 고안한 집단 생활촌에서 흡혈귀가 제공한(직접적인 서비스 제공은 아닐지라도 그 기본 아이디어를 낸게 분명한) 식사를 제공받으며 희생을 잊고, 아픔을 잊고, 이별을 잊기를 세뇌당한다. 그 모든 세뇌는 ‘육체의 것’을 버리고 ‘정신의 것’을 추구하라는 고상한 명분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희생자의 가족들이 먹고 있는 것은 희생자 그 자신이듯이,그들이 얻은 숙면과 평안은 헛되고 거짓된 것 뿐이다. 대단한 아이러니다. 흡혈귀를 저주하도록 가르치는 집단의 수괴는 흡혈귀다. 희생자 가족들을 위한 공동체 밑바닥에 깔린 것은 희생자들의 뼈다. 이별의 아픔은 없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갔다는 그 곳에서, 사실은 지나가지 않고 지나갈 수도 없는 아픔들은 영원히 땅속에서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앓고 있다.
사실 말미의 부분들은 내 취향은 아니였다. 극 사실주의자(?)인 나는 판타지나 호러, SF를 읽더라도 그 앞뒤가 빈틈없이 딱딱 들어맞는 텍스트를 선호하며, 분위기나 묘사 등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늘 미진한 마음을 품기 일쑤다. 때문에 왜 그런 비가 내렸는지, 마지막 땅에서 솟아나온 것들이 무엇에 의해 촉발되었고 왜 하필 그 타이밍에 나왔으며 그런 액션을 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이건 애당초 현실적인 답은 기대할 수 없겠으나) 명확한 이유가 나오지 않는 부분에선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호 문제이므로, 분명 이런 부분에 더 만족스러운 분들도 계시리라. 왜냐면 취향이 아닌 나에게도, 그 부분들이 내뿜는 공기와 분위기, 그 끈적함과 비릿함과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과 혼란이 너무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도 꽂히는 부분도 다르겠으나, 내게 무별촌은, 흡혈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글이었다. 산업재해로 죽은 젊은 목숨들, 약간의 위로금과 성대한 장례식장과 큰 화환으로 그 모든 것을 덮어보려 하는 기업들, 열악한 시스템을 방관하는 정치인들, 그 일에 무심한 대중들, 그런 사람들은 흡혈귀 만들기에 전혀 상관없이 무관하고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래서, 예진이처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마음의 평화를 찾아 헤매였던 주인공에게, 흡혈귀 없는 평온한 구원의 세계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왼손씨와 그녀는 마침내 올바른 적을 찾고 그에 응하는 댓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고, 아무것도 없던 일이 될 수 없지만, 미루어진 값들이 치러질 시간을 맞이하러 가는] 그녀에게, 그 시간이 그녀의 승리와 평화와 구원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조용히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