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클리벤의 금화는 정말로 이상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 이상한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는 과거의 사건들, 신화와 역사의 흔적들과 깊게 얽혀 있다. 사건 하나하나마다 웃고 울고 화내고 당황하고 통쾌해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이 난리통의 결말이 어디로 갈지 궁금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지는 동시에 독자로서 완결도 안 난 소설의 프리퀄을 요구하게 된다. 피클금은 반드시 프리퀄, 설정집(신화편, 역사편, 실용편, 인물편), 스핀오프 등등 파생작품이 나와야만 한다!
작중 인물 하나하나가 세계관에 합당한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소설 속 세상을 실제 존재하는 세상처럼 생동감 넘치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피어클리벤의 금화라는 작품에는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용들의 경우, ‘린트부름의 계회’에서 유래한 ‘린트부름의 적생자’라는 그들의 특성에 의해 ‘용은 제한 없이 마법을 쓰고,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특성을 공유한다. 마법사들은 ‘에다의 창송’을 엮은 ‘시무나리’를 외우고 이해하여, 세계의 구성원리를 깨달아 마법을 사용한다. 고블린은 ‘스스로 추락한 신’ 흐로킨의 혈맹이며, 류그라는 신목 ‘류그네라스’에서 태어난 민족이다. 이런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해 사건을 일으킬 때마다, 이 세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특히 이런 설정이 웃기는 부분에 터져나오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시야프리테가 앗슈레드에게 “너는 어떤 마름병 걸린 가지의 끄트머리인가요?”라고 욕을 퍼붓는 장면에서 정말 정신을 놓고 웃었다. 나무에서 태어난 종족이기에, ‘마름병 걸린 가지 끄트머리’라는 말이 상대방의 부모와 혈통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니!
그와 동시에 작중 인물들의 행동원리가 또 하나하나 납득이 가도록 짜여진 서사도 읽기를 멈출 수 없도록 만든다. 가장 사랑하는 인물을 꼽자면, 천년제주 뉘르뉴이다. 뉘르뉴는 심지어 자신을 해치러 온 마법사마저 그 아름다움에 울어 버리게 만든다. 하즈바는 원래 천년제주라는 위협을 통제하기 위해 안그라네스를 찾아 해치러 왔으면서, 실제로 눈 앞의 뉘르뉴를 보자 울어버린다. 창세의 섭리를 이해해 마법을 쓰는 마법사의 눈에, 천 년을 살아온 강대한 서리심에게 주어진 아름다움과 심오함은 어떻게 보였던 것일까? 작은 소녀의 몸에 깃든 위엄, 천 번의 겨울을 증거하는 바닥에 닿을 듯 긴 백발과 빙하보다 더 푸른 눈동자…. 그런 것들을 상상하면, 뉘르뉴의 아름다움에 어느 새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토록 아름답고 강력한 존재가 약속과 겨울의 신 윤나를 모시는 무녀로서, 대제 셰이위르의 벗으로서, 그리고 울리케 피어클리벤의 친구로서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천년제주의 존재를 전설로 치부하는 오만한 육왕의 앞에 폭발적인 침묵으로 나타나 “네가 감히 내게 약속된 바를 부정하느냐!”고 말하는 부분이다. 들은 적 없는 뉘르뉴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것처럼 생생하다.
뉘르뉴 이외에도 수많은 캐릭터들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심지어 애정이 가지 않는 인물들의 동기조차 납득은 할 수 있도록 서사가 짜여져 있다. 용의 권위를 해체해 버리고자 일종의 반역까지 획책하면서도, 그 용을 경배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다가가지 않는 드레스바르프 후작. ‘용 없이 잘 해 보려고’ 애쓰던 아우스뉘르의 황제이면서, 파마의 결계에 당한 빌러디저드를 보고 이 꼴은 못 보겠다고 외치는 이드냐. 심지어 어린애를 류그네라스의 제물로 바쳐서 신목을 살려야 한다는 시바네즈까지도. 결론에 동의는 못 하더라도, 그들이 왜 그러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설정도 인물도 서사도 모두 매력적인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즐겁게 읽는 독자로서, 걱정되는 점은 딱 하나다. 이전에 트위터에서 피클금은 8권 완결이라고 들었는데, 브릿G 연재 분량 약 45편이 단행본 1권으로 묶여 출간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연재분인 314화는 7권 분량인데(7×45=315)…. 과연 단행본 한 권 안에 이 모든 난장판이 수습되어 완결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2부로 이어집니다! 같은 결말이어도 박수를 칠 준비는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원하는 결말은 아우스뉘르와 미스미르드, 서피바리와 흐로킨의 혈맹들까지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국가의 수반에 울리케 피어클리벤이 즉위-혹은 선출-되고 국가의 통화로 빌러디저드와 울리케의 초상이 새겨진 금화가 통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울리케는 용의 권위도 혈통의 특권도 모두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제 2의 셰이위르가 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어떤 방향으로 가든, 울리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을 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