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 쓰기에 있어서 어쩌면 제일 중요한 미덕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엑스트라는 죽어야만 하는가 (작가: 해차반, 작품정보)
리뷰어: Mast, 23년 1월, 조회 108

리뷰에 앞서서 장르소설의 공식화된 설정에 대해서 먼저 말을 해볼까 합니다.

이제껏 수많은 장르계 소설 혹은 웹툰에 있어서 대박을 터뜨린 삼종신기(神機)을 아시나요?

모르시지 않을 겁니다.

 

회빙환

 

회빙환이란 회귀와 빙의, 환생의 줌말입니다.

 

회귀 : 한 바퀴 돌아서 본디의 자리나 상태로 돌아오는 것

빙의 : 영혼이 옮겨 붙는 일

환생 : 되살아나는 것

  • 옥스퍼드 사전 참고

 

회귀는 모종의 이유로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롤백하여 미래의 지식을 지닌 채로 2회차 이상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래 지식이란 정말 말도 안되는 수준의 치트키로 작용합니다.

이는 주인공에 맞설 대적자들에게는 불합리할 수준으로 작용하는 벙커 버스터이자 독자들에게 있어서 주인공이 맞닥뜨릴 위기의 순간들에 고구마 하차를 미연 방지시키는 신경안정제인 동시에 보다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줄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흥분제로 작용을 합니다.

남들은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의 지식을 이용하여 훗날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알토란같은 인적, 물적 재원들을 수집해나가며 승승장구하는 성공스토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잘만 쓴다면요.

 

환생은 일단 한번 죽은 주인공이 전생의 기억을 지닌 채로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불우하거나 재능이 뒷받침을 해주지 않는 전생.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지만 결국 한계점을 돌파하지 못한 채로 허무하게, 불합리한 방식으로 끝나버린 전생을 뒤로하고 재능과 환경이 든든한 축복받은 존재로서 다시 태어나 무쌍적 활개를 친다는 이야기.

이제는 흔하기야 흔합니다만 여전히 먹히고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설정입니다.

잘 쓰기만 한다면요.

빙의는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의 점프가 이루어질 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차원의 세상이나 게임, 소설 등의 등장인물로 현대인의 정신이 흘러드는 상황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식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세계의 인물로의 빙의물은 강점이 많은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비현실적인 세계관 속으로 떨어진 나홀로 지구인인 주인공에게는 자연스러운 이입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물론 그렇다고 환생이나 회귀물의 주인공에게 독자가 마음을 이입시키기가 어렵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다만, 독자와 인물이 서로의 보폭을 맞추기가 가장 적합하다고나 할까요?

회귀 혹은 환생물에서 곧잘 등장하는, 인간성마저 희생시켜가며 성공을 위해 복수를 위하여 폭주하는 기관차마냥 질주해 나가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이 언제나 그 뒷모습에 머물러 있는 것에 반해 주어진 상황들에 당황하고 고민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다 많이 드러내곤 하는 작중 화자에게 자연스러운 응원을 보내주고 싶은 건 저뿐만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소설 ‘엑스트라는 죽어야만 하는가’는 빙의물입니다. 현대의 직장인이었던 주인공이 미처 다 읽지 못한 소설의 세계 속으로 전이를 한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이나 혹은 주인공을 괴롭히는 주연급 조연인 악역 따위가 아니라 엑스트라로서, 전개상 남주인공과 맺어지게 될 여주인공에게 작중 초반의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 소모될 그런, 얼굴없는 캐릭터에게로 주인공은 빙의를 합니다. 특별히 개성이 있는 전개방식은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클리셰 비틀기는 이미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클리셰로 인정받을 만큼 정형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아름다움은 꼭 독특한 소재나 세계관에만 숨어있는 건 아니죠.

장편소설급의 분량을 다섯 권, 여섯 권…심지어는 열 권이 넘도록 연재를 이어나가야만 하는 장르소설의 특성상 ‘진짜’는 소설을 이루는 무대에만 숨어있지 않습니다.

진면모는 캐릭터 즉, 이야기를 풀어나갈 주인공에게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주인공은 귀엽습니다. 꼭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우는 느긋한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귀여워요. 실제로 작중에 몇 번 등장하여 녹여낸 나바루 왕의 원숭이 또는 나무늘보와 같은 동물적인 형상을 생각해보면 작가님이 애초부터 의도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주인공의 질리지 않는 행동거지와 말투야 말로 장르소설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늘 생각합니다. 스토리적으로 대단한 서사가 없더라도, 강렬한 탄산적 사이다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하차없이 주인공의 행적을 계속해서 쫓고 싶은 마음을 독자에게 형성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가님 본연의 스타일이랄지 센스를 잘 버무려낸 결과물이 아닐까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소설 ‘엑스트라는 죽어야만 하는가’는 전무후무한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굉장히 안정적입니다. 튀는 선 없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듯 날뛰지 않는 필력과 인물들의 행동반경, 전개의 방식과 속도감은 모두 아울러서 나쁘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창작물에는 나름의 한방이 있어야 합니다. 후렴구 없이 느긋한 가사만을 반복하는 노래가 그러하듯이 굴곡없이 완만하기만 소설은 매력이 없으니깐요.

저는 아직은 소설의 본격적인 재미를 열어줄 펀치가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대가 됩니다.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듯 아직까지는 칼자루를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주도적인 행동을 나섰을 때 이야기가 어떠한 급물살을 타게 될지.

엑스트라임을 거부하고 진정으로 주인공으로서 거듭날 화자의 성장이 기대가 됩니다.

연달아 터질 연쇄화학반응이 이야기의 흐름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무척 기대가 되는 소설!

엑스트라는 죽어야만 하는가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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