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밝히건데, 나는 RPG게임을 해본적이 없다. RPG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게임은 거의 해본 적이 없어서, 룰을 알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게임은 테트리스 뿐임을 고백한다. (따라서 이 리뷰에도, 잘못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엉뚱한 소리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사죄드린다.)
그런 주제에 이 글을 읽었으니, 이해가 잘 될리 없다. 초반에만 몇번을 다시 돌려 읽고, 건너 건너 봤던 누군가의 게임 모습을 애써 반추해내고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왜 계속 읽었느냐고? 그야 간단하다. 갈라테이아에게 왜 가슴털이 있는지 궁금하니까.
멋진 옷이 많다는 친구 추천에 게임을 시작한 ‘국밥두봉철’은, 액스마스터라는 가슴털이 부숭부숭하고 근육빵빵한 남성미의 화신같은 캐릭터를 300시간 이상 커스터마이징한 덕분에 게임 시작과 동시에 신화 위업을 달성한다. 그 원치 않은 화려한 데뷔에 많은 길드의 초대를 받지만, 정작 그는 자기 스킬에 무심한 ‘탕비실’의 3번째 길드원이 된다.
룩덕으로서 액스마스터에게 온갖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싶었던 국밥두봉철은 경계를 붕괴시키는 수정(이하 경붕정) 아이템을 얻기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모두가 탐내는 아이템인만큼 쉽지 않고, 이 와중에 이 아이템을 준다는 테이레시아스를 소환하기 위해 일단의 무리가 역병을 일으키는데….
그리스로마 신화와 게임이 연결된 이야기인 만큼, 신화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갈라테이아가 피그말리온이 만든 여인 형상의 조각상으로 나중에 아프로디테의 힘으로 진짜 여인이 된다는 것, 테베에 역병이 돌자 왕 오디이푸스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불렀다는 것 등.
그러므로 역시 신화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국밥두봉철은 미(美)세계의 아킬레우스가 아닐까? 외양은 헤라클레스 같은 이 캐릭터는, 굳이 조지프 캠벨의 영웅서사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그 행보가 영웅서사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비범한 탄생에서부터, 탄생과 동시에 강한자의 공격이라는 역경을 겪고, 이후 숱한 모험을 겪는다. 얼마 뒤 조력자(경붕정의 존재를 알려주는)를 만나고, 역병을 퍼트리는 악당들로 위기를 맞이하지만, 결국 모든걸 극복한다.
국밥두봉철은 왜 홀로 전쟁터로 뛰어들어갔는가? 아킬레우스가 소중한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 트로이로 달려간 것을 생각해보라. 그는 어떻게 홀로 그 많은 강한 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아킬레우스가 여신인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았듯이, 그 역시 탄생과 동시에 미와 사랑의 여신으로 부터 받은 신의 축복으로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러므로 아킬레우스가 한 때 공주 옷을 입었던 것 처럼, 국밥두봉철은 마지막에 그 코스튬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를 무너트린다면, 국밥두봉철은 미(美)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무너트린다. ‘봐라! 아름다움은 이렇게 다양한 것이다!’라고. 그리하여 그는 털이 부숭부숭한 다리에 컬러풀한 가슴털을 휘날리며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세상이 가진 미에 대한 선입견을 깨 부수는 용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작품 속 말처럼, 아름다움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단, 아름다움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겠지만.
그리하여 나는, 혼자 생각한다. 국밥두봉철은, 틀림없이 아킬레우스 일 거라고. 그가 만든 갈라테이아에겐, 가슴털이 꽤나 잘 어울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