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핵심을 말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대사를 고르겠다.
“그거 알아? 만약 고지서 사건이 해결되고 범인이 밝혀지면, 오늘 반상회는 열릴 필요가 없어져.”
주인공 김희영은 2년간 히키코모리로 살며, 아늑한 510호 안에서 ‘탐정 김영희’이라는 제목의 만화를 그리던 만화가 지망생이다. 별 볼 일 없지만 별 일 생기지 않던 그녀의 삶에 변화가 찾아든 것은 부녀회장이 찾아오면서부터다.
다름 아닌 반상회 장소로 김희영의 집이 지목되었다는 것! 거부할 수 없이 낯선 사람들이 집 안으로 몰려들 위기에 놓인 그녀 앞에 ‘탐정 김영희’가 나타난다. 설명이 좀 길었지만, 필자가 택한 저 대사는 바로 탐정 김영희가 김희영에게 해준 말이다.
반상회가 열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 관리비 고지서가 석 달 동안 호수에 안 맞게 꽂혀 있어서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 반상회를 열게 되었다니, 범인을 잡으면 열릴 일이 없는 것이다.
실존하지 않는, 만화 속 캐릭터가(그것도 주인공 김희영이 직접 창조해 낸 인물) 실제로 나타나는 장면은 흥미롭다. 짧게 발췌하여 옮기자면 아래와 같다.
[하얀 얼굴에 긴 갈색 머리를 높게 틀어 올려 묶은 여자. 그 위로는 갈색 캡 모자를 썼는데, 거기에는 작은 파이프 담배 모양의 뱃지가 달려 있다. 서서히 더워지는 날씨에도 하얀 셔츠와 검정 면바지를 입고, 그 위로는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멋들어지게 걸쳤다. 마치 탐정 김영희처럼. (중략) ‘탐정 김영희’는 어디에도 발표된 적 없는 미공개 작품이었으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남의 컴퓨터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건 밥 먹기 보다 쉬웠다. 이유는 몰라도 웬 미친놈이 김희영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탐정 김영희’를 훔쳐보고, ‘탐정 김영희’와 똑같은 차림을 한 채로 김영희의 베란다에 숨어들었다. 사고의 흐름이 그렇게까지 흘러가자,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김희영의 손가락은 더욱 거침이 없었다.]
눈앞에 등장한 탐정 김영희의 외모 묘사부터 시작하여, ‘탐정 김영희’라는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112 신고까지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에 재치 있었다. 주인공이 지금은 히키코모리로 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재치’가 담겨 있는 입체적 인물이라는 게 보여서다.
‘탐정 김영희’는 창조자 ‘김희영’의 눈에만 보이는 상태로 김희영이 바깥 외출을 돕고, 김희영의 홈 스위트 홈으로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고지서 사건’ 해결에 적극 나선다. 238매 분량의 이 소설은 속도감 있게 읽히고, 아기자기한 에피소드와 대사들이 흥미 있는 편이다. 다소 ‘쉬운 결말’ 혹은 너무도 따듯한 결말로 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톤에 잘 맞는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서 김희영이라는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하여 이 사람이 방에 콕 박히게 된 계기 사건도 조금 보여주면서 이 사람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필자가 이 소설을 읽다 보니 김희영에게 애정이 생겨서 좀 더 바라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이것만으로 이미 잘 만든 인물인지도!
끝까지 읽고 나면 왜 제목이 탐정 김영희가 아닌 탐정 김희영희인지 알게 되는 이 소설! 문장이 잘 읽히는 편이고, 아기자기한 장면들이 좋으니 가볍게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