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책을 읽기’ 위한, 이백년의 삶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Bicentennial Bibliophile(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 (작가: 전혜진, 작품정보)
리뷰어: 노말시티, 17년 6월, 조회 100

한때 ‘책 읽기’를 정말 좋아했었다. 출근 두 시간, 퇴근 두 시간, 대중교통 안에서 보내야 하는 꼬박 네 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하기는 커녕 삶의 기쁨이자 목적이었다. 직장 근처로 이사가지 않고 무지막지한 시간을 길에서 보내기로 한 이유였다.

희한한 건, 그렇게 좋아하는 책을 주말에는 별로 읽지 않았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허락되고 몸이 편해지면,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리모컨을 붙잡았다. 그렇게 보낸 주말은 지나고 나면 뒷맛이 나빴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는 책 읽기만 가능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거리낌없이 달콤했다. 책을 보는 것도 가능한 삶이 아니라, 책 밖에 볼 수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했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78년 후, 그러니까 지금 22살인 사람이 200살이 되는 해다.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돌파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대체한 세상. 인간은 특별히 일을 할 필요도 없이, 돈이 있다면 고급스러운 쾌락을 무한히 누릴 수 있고, 돈이 없다면 적당한 싸구려 쾌락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말의 내가 그랬듯, 책이 아니라 더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쾌락에 빠져 산다. 소설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책에서 삶의 목적을 찾는 두 명의 주인공, 좀 더 고차원적인 삶을 꿈꾸며 이를 악물고 상류사회에 진입했지만 그 곳에서 길을 잃은 전문사서 윤현과, 하류사회에 머물며 오로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어가는 황재윤이 만나는 이야기다.

여기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을 추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오로지 지식을 두뇌에 주입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텍스트를 직접 뇌에 입력하는 효율적인 기술이 이미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생명이 종료된 후에도 네트워크에 업로드된 정신이 책을 읽을 (텍스트를 입력받는다고 표현해야 맞겠지만)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책’ 그 자체다. 더 정확하게는 ‘책을 읽는 삶’이다.

표면에 달라붙은 분자의 일부를 코로 전달하는 종이에, 질감에 따라 미세하게 퍼져나간 잉크 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는 활자들을, 이차원적인 면을 통째로 바라보고 일차원적인 선을 따라 읽어나가는 것을 반복하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낱장들이 한 권의 단단한 책으로 묶인 무게감이 느껴지는 손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는, 고심해서 고른 책장의 한 구석 자리에 다 읽은 책을 밀어 넣음으로써 완성되는 ‘책 읽기’라는 행위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달콤하게, 그리고 의미있게 만드는 지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부디 내 생명이 다 하기 전에 특이점에 도달해서, 오로지 ‘책을 읽기’위한 이백년의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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