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수많은 계획을 세우며 살아간다. 퇴근 후에 영어학원을 갈 것이고, 내일은 거래처와 약속을 잡을 것이고, 주말에는 유명한 맛집을 방문할 것이고, 다음 달에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여행을 갈 것이고. 그렇게 계획을 세우는 행위에는 나의 일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실은 당장 5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면서도.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일상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가을의 일상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잔잔히 흘러갔으나, 어느 날 불안이 슬며시 끼어든다. 가슴 초음파 검사를 받은 이후부터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주일동안 회사에 휴가를 내며 가을은 자신의 어린 날을 떠올린다. 건강했던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았던 날을. 가을의 평온했던 일상은 그 일을 계기로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가을은 거기서 불안과 무기력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본인이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과 무기력을 두번째로 알았고,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여자네 집을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신고하며 불안과 무기력을 세번째로 알았다. 이 이야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에피소드에서 가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이 가정폭력을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지만 그마저도 경찰이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탓에 거기서 그쳐야했다. 자신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느끼는 무력감은 사람을 얼마나 우울하게 만드는가.
품었던 희망은 신기루였다. 언제나 처참하게 짓밟힐 수 있는 것이 희망이었다.
라는 문장이 이 소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나을 수 있다는 희망도 짓밟혔고, 별일 없을 거라던 경찰과 마트 계산원의 희망도 짓밟혔다. 분노하기엔 가을은 이미 지쳤고 무기력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희망은 소설에서 밝혀지지 않은 가을의 검사 결과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고, 결정된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가을의 독백으로 보았을 때 결과가 어떠할 지는 쉽게 짐작하기 힘들다. 그저 개인적인 희망으로 가을의 결과만이라도 좋았으면 할 뿐. 다시 회사로 복귀할 것을 암시하는 가을의 전화통화를 보면 아마도 가을의 앞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회사와 집을 반복하겠지. 결과가 좋으면 좋은대로 무심하게,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대로 불안을 달고서라도.
사건의 경중이 어떻든 담담한 문체로 서술된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오며 다시금 그들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내 일상에 불안은 과연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