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는 감상평입니다.>
이 작품은 브릿G 리뷰 공모전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안 읽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긴 분량을 스마트폰을 통해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 과연 감상을 남기는 것이 저와 작가님께 어떤 도움이 될까 고민했습니다. 좋은 방향으로의 감상평이라면 고민 없이 바로 글을 작성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 개인 취향을 기준으로 이 작품을 그리 좋게 이야기 하기 힘들었기에 감상평 작성에 있어서 상당히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감상 이벤트가 끝나고서 이 글을 작성합니다.
본격적으로 감상평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1. 빙의에 관해
우선 장르소설, 웹소설에서는 클리쉐 혹은 웹소설의 규칙이 있습니다.
그 중에 빙의는 현재의 지식 혹은 특정 지식을 갖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 시키면서 주인공이 활약하는 장르입니다.
즉, 주인공이 지금 시점보다 과학이나 철학 의학이 수준이 떨어지거나 특정 정보를 주인공만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 상태에서 특정 시기의 인물에 ‘빙의’ 해서 주인공이 현재의 지식을 마구 사용하는 방법으로 과거의 지식을 갖고 있는 등장인물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킹왕짱이 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웹소설을 보면 대부분의 주변 인물들이 바보 수준으로 묘사가 됩니다. 왜 그래야 하냐면 그렇게 설정과 묘사를 해야지만 주인공이 활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이 작품 속 주인공 ‘레나’는 그 어떤 지식도 활용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현재의 지식, 빙의 되기 전 추리소설을 통해 얻은 지식, 클리쉐 등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추리소설에는 ‘이런게 있지’ 라는 정보의 나열은 합니다. 그 정보의 나열이 등장인물이 아닌 독자에게만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소설에서 묘사되는 작품 속 빙의 과정과 추리소설의 정보 나열을 삭제하고 읽어도 이 작품을 읽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설 속에서 고전이 등장하는 것은 읽는 기쁨이 될 수 있지만, 이야기 진행이 더딘 상태에서의 등장이 그리 반갑지는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면, 주인공이 빙의가 되는 순간 모든 ‘설정이 어그러졌다’는 묘사가 나오고, 그 묘사 때문에 주인공인 레나는 활약을 할 수 없습니다. 빙의를 했는데 정보와 지식을 활용할 세계가 무너진 상태 인 것이죠.
바로 이 문제가 주인공이 활약할 공간을 죽이고, 사건에 직접 개입이 어려워 지면서 작품이 지루하게 되버린 가장 큰 문제 입니다.
즉, 빙의 까지 했지만 주인공이 활약을 할 소설 속 무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설의 기본은 주인공이 날고, 기고, 땅을 파고 설치고 깝치고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독자는 그런 주인공을 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 속 주인공 레나는 이런 주인공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저택에서 여섯명이상 죽어나가는 동안,
레나가 어려운 질문을 해서 피곤해 하는 등장인물도 없고, 의심가는 인물을 몰래 감시하다 들키는 일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안일어 나는 것이죠.
소설안에서 레나가 첫 번째 위기를 맞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녀를 동반해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면서 진범을 찾으러 가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진범으로 알고 있던 인물이 죽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빙의 된 레나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을 무엇 일까요?
바로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명을 질러야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고, 밖에서 대기 하고 있던 하녀를 통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그 안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는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 일어난 사건은 그 정보와 다른 사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빙의 된 레나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런 일의 결과로 경찰에게 범인으로 의심 받습니다.
(그리고 그 의심을 벗어나는 과정은 결코 동의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이렇게 위기에 몰리게 되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인공 레나는 빙의와 주인공이라는 부분이 동시에 날아가 버리게 됩니다.
독자는 위기를 벗어나는 레나를 상상하면서 글을 읽는 것이지, 경찰에 범인으로 몰리는 고구마 상황을 보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고구마 이후 시원한 사이다를 줘야 합니다. 특히 웹소설에서는 말이죠.
빙의를 했으니 당연히 레나는 현재의 지식과 소설 속 지식을 활용해서 그 위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독자는 그 장면을 보기 위해 소설을 읽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런 레나의 모습은 소설이 끝나기 직전까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단 한 건의 살인 사건도 막지 못하고, 단 한 사람의 등장인물도 구해내지 못합니다.
긴다이치 시리즈나 김전일 시리즈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두 시리즈에서는 독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그 많은 등장인물이 죽어도 그 시리즈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 레나를 빙의 시킨 이유를 상상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작중에서 사신 탐정이 등장 했으면 그 사신 탐정을 막는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여자이자 하녀인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는 시대 상황속에서 남자이며 유명한 사신 탐정을 조종해서 사건을 해결 하는 것이 빙의를 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즉, 빙의를 시켰으면 빙의를 시킨 작가만의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2. 가위, 바위, 보의 문제
상상 해 봅시다. 두 사람이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아 있고, 테이블 위에 케잌 한 조각이 담긴 접시가 놓여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굉장히 배가 고픈 상황이고, 서로 케잌을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봅니다.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사람이 먹기로 말이죠.
이렇게 합의 가 됐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기 전에 ‘만약 가위를 낸다면…’ 혹은 ‘어깨가 쳐졌으니 가위를 내기는 힘들거야…’ 이런 묘사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묘사 이후 행동을 하고 그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누가 케잌을 먹었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하지만 행동에 따른 결과 없이 ‘가위를 내려는건가? 아니야 이 상황에서는 보가 우선이야. 어깨가 처진건가 아니야 다른 쪽에 힘이 들어간거야… 블라블라’
이런 상황에 대한 의심으로 이야기를 전부 채우면 독자는 누가 케잌을 먹었는지 알기 전에 떨어져 나갑니다.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 것이죠.
읽는 독자의 머리속도 복잡해지고, 주인공이 행동하지 않는 답답함에서 글 읽기를 포기하는 거죠,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주인공과 탐정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레나의 목소리를 통해서 온갖 설정과 역사가 다 나오고, 탐정은 사신 탐정이라는 별명 때문에 등장인물 대부분이 죽어나가도 아무것도 안합니다.
심지어 탐정이 슬프거나 책임감을 느끼기는 하나? 범인의 잔혹성에 분노는 하는 건가? 신출귀몰 하는 범인을 못 막는 경찰을 탓하긴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소설이 진행 되는 동안에 ‘시체 발견-동요비교-누가 범인이지?’
이 패턴을 계속 반복합니다.
주인공과 탐정이 하는 일은 마주 앉아서
‘이랬으니 저랬을 것이다.’
이게 끝입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안락의자 탐정으로 보이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건이 일어나고 두 사람이 사건에 대해서 유추했으면 그 다음 스텝으로 이어져서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가 성공과 실패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런 장면이 현저히 적습니다.
두 사람이 추리를 통해서 뭔가 찾아보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괴롭혀서 뭔가 알아내는 것도 아니고, 집을 뒤져서 비밀을 알아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희생해서 미끼로 쓰는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을 내부(저택)에 묶어 놓고, 외부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안락의자에 앉아서 가장 그럴듯한 추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은 왜 추리를 하는 것인지, 그 추리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떡볶이를 시킬건데, 치킨도 시켜야 하나? 아냐 둘 다 매우니 치킨은 간장양념으로 시켜야해. 하지만 떡볶이가 매우니 치킨의 간장 맛을 못 느낄 수도 있어. 그렇다며 떡볶이에 치즈를 얹어야 하나? 음, 치즈를 얹고, 치킨까지 먹으면 너무 느끼하지 않을까? 물론 콜라와 치킨무가 있으니 해결 되겠지만, 그런데 과연 해결이 될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 폰을 들지는 않습니다.
‘앱을 켜고 일단 주문을 하라고!’
제 심정입니다.
이 과정을 보는 독자는 흥미롭게 이 과정에 동참했을까요?
사실 동참 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다른 리뷰와 댓글을 봤는데, 상당히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단을 쓰면서 혼자만의 생각이긴 한데, 그래도 제 감정을 잘 전달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기, 승, 전, 결의 분량의 문제 입니다
총 50페이지 짜리 소설이 있는 경우 기,승,전,결은 각각 몇 페이지로 구성이 되어야 할까요? 특히 웹소설에서 이 분량은 어떻게 배분되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71회의 회차로 구성된 이 소설은 시체 발견 – 동요 비교 로 거의 80%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진행이 없는 패턴 반복이 80% 라는 것입니다.
나머지 10%에서 사신 탐정이 헛다리 짚고,
나머지 10% 주인공이 범인을 잡습니다.
그런데 이 각각의 10%가 뭔가 절정과 결말의 짜릿함을 주었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 입니다.
사실 다른 분들은 좋은 반전이다 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길고 루즈하며 딱히 의미를 찾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절정과 결말은 한 칼에 쓱 베는 걸 선호하는 저로서는 이렇게 긴 사건 해결의 과정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추리소설을 읽는데 범인이 궁금하지 않다니, 오래만에 한 경험이었습니다.
(심지어 범인은 읽다 보면 중간 쯤 알 수 있습니다. 남말 가로막는걸 클리쉐로 쓴건지는 모르겠지만…)
사건은 일어나는 거지 나열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범인이 너무 유능합니다.
집이 얼마나 넓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등장인물이 10명이 넘고, 심지어 경찰도 쫙 깔렸고, 대부분의 행동이 감시 당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는 건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몰래 돌아다니며서 살인을 저질렀는데, 범인은 그 모든 의심을 피해 갑니다.
차라리 경찰 하나가 도박 빚이나 뭐 그런거 때문에 범인에게 동조했다고 하면 이해 하겠습니다.
이 저택에 방이 몇개 이고, 가장 긴 복도는 얼마나 길고, 바닥에는 무슨 카펫이 깔려 있고, 계단은 나무인지, 돌덩이 인지 궁금합니다.
등장인물들은 무슨 신발을 신고 있길래 밤에 걸어도 소리가 안나는지, 각 등장인물의 타임 라인은 어떻게 되는지 정말 많은 부분이 궁금합니다.
심지어 ‘이 정도면, 나라도 살인을 택하겠는데? 안잡 힐 자신이 있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그렇게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서 경찰과 탐정, 그리고 주인공이 야간에 보초 한 번 서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4. 토머스에 관한 부분입니다.
토마스는 성인 여성의 시체를 매다는데 도움이 될 정도의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힘 센 성인 남자를 이길 수 없어서 현장에서 토마스를 못 죽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침대에서 토마스의 팔을 범인의 팔과 비슷하다고 묘사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집에서 오렌지 하나만 맨손으로 짜봐도 악력을 쓰는데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남자의 팔이 가늘고 약해도 체구가 작은 여성의 팔과 구분이 안 갈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외부 인물을 본 게 아니라 그 집에서 오랜기간 하녀일을 한 하녀의 눈에 말이죠.
그리고 소설 속에서 토머스가 앓고 있는 병이 자폐인지, 지적 장애인지, 서번트 증후군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집중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거나 팔만 내놓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이런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은 피부가 상당히 민감해서 과거의 침대를 사용 했다면 피부가 민감해서 이불을 덮고 가만히 있는 것은 기대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토마스의 지능이 어느 정도 인지 모르겠습니다.
특정 노래는 정확히 부를 수 있고, 몇 가지 행동은 틀리지 않고 반복할 수 있고,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체 유기를 도울 수 있고, 다른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은 정확히 알아 듣고 멈출 수 있고, 심지어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순진하고, 먹을거 주면 의심 없이 받아먹으면서 팔은 희고 가늘어서 여성의 팔과 구분이 안가는 인물.
너무 작가 편의적인 인물 설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차라리 토마스를 약물로 기절 시켰다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누워서 이불을 덮고 있는 팔이 가늘고 하얗지만 성인을 목 매달 수 있는 자폐 성인이라니요…
5. 마지막으로 여성에 관한 부분입니다.
저는 나이가 많은 남성입니다.
그래서 숙련된 하녀가 아가씨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의 팔만 보고서 착각 할 수 있다는게 이해가 안갑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여성분들은 뭔가 바뀌면 기가 막히게 알아 차리는 경험들을 했기 때문입니다. 가끔 바로 그 자리에서는 몰라도 나중에 꼭 그 상황에 대해서 바뀐 부분에 대해 확인하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꽃 무늬의 차이를 모르는 여성의 묘사는 도저히 납득 할 수 없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 하겠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러면 큰일입니다. 하녀는 적어도 가방 때문이 아닌 ‘그 팔! 설마?’ 정도의 대사는 남겨주고 명을 달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데, 신문에 사진이 실린 게 지문 감식이 현장에 사용 된 것 보다 빠를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이 소설을 읽고 느낀 부분을 정리한 글입니다.
다른 분들이 칭찬했던 부분은 동어 반복 같아서 따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설정이 너무 참신하고 좋아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아쉬움이 남아서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의 끝에 작가님께서 좋은 트릭이 생각나면 다음 편을 쓸 수도 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다음 편을 기대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더군요.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 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하며 미흡한 글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