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죄라면 세상을 태우리라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꽃불 – (상)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2년 7월, 조회 53

*본 리뷰는 장아미 작가의 단편 〈꽃불〉의 상편과 하편을 완독 후 작성했습니다. (하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죄’를 지은 적이 있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은 결코 그런 적이 없다고 답할 것이다. 당신은, 아마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한 적이 없으며 설령 갖고 싶다 마음먹더라도 그것을 실행에 옮긴 적이 없다. 누군가를 깊이 미워할 수는 있으나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을 것이다. 돈을 단숨에 벌고 싶은 마음에 사기를 치지도 않았고, 하물며 무단횡단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죄’가 없다.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선에서.

그런 당신은 ‘죄책감’을 느낀 적이 없는가. 사회적 규범을 어기지 않았다면 그것을 느끼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지은 것처럼 행동하며 산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가 불필요한 순간에도 습관처럼 나오고, 정상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것에 나를 맞추어야 한다. 타인과 다름은 잘못이며, 정해진 인생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용서받지 못한다.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죄를 양산하고 심지어 모두가 자기 감시를 습관화하고 있다. 온라인에 단편적으로 전시되는 타인의 최고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어야만 한다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세상에는 죄가 차고 넘친다. 죄의 사전적 정의는 ‘양심이나 도리에서 벗어난 행위’이거나 ‘잘못이나 허물로 인하여 벌을 받을 만한 일’이지만, 지금 곳곳에 만연한 ‘죄’의 감정은 그것과 다르다. ‘착한 마음’이라는 잣대에서 진심으로 우러나는 ‘죄의식’과 작은 것에서 가책을 느끼는 선량함도 일동의 죄책감이지만, ‘죄’라는 말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게 남용된다. 생김새, 먹는 것, 눈치, 성적, 가치관, 규범, 때로는 입는 옷의 모양까지, 사람들은 남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죄’를 규정한다. 타인의 외형, 의견, 삶의 방식과 그가 속한 사회적 위치는—종종 그것이 ‘기준 미달’로 여겨질 때 ‘죄’가 된다. 물론 그것은 잘잘못을 가릴 수 없는, 가려서는 안 되는 개인의 특성이다. 그러나 단지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전형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죄’를 받는 사람은 늘어가고 있다.

혹자는 과거와 지금의 죄책감이 다른 양산을 보인다고 말한다. 과거의 죄책감이 타인의 정죄와 판단으로 발생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그것으로 자신을 옭아맨다는 것이다. 이 말이 결과론적으로는 옳지만, 모든 죄책감의 시작은 ‘타인’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남’이 기대하는 어떤 이상을 충족할 의무가 있다는 듯, 끊임없이 올무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이상’을 조금도 닮지 않아도 될 자유가 우리에게는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만들어진 죄악’ 중 가장 보편적이고도 만연한 것은 외형의 다름이다. ‘개성’’은 수용하지만 ‘장애’에는 관용이 없는 이곳에서 남과 다르게 태어남은 그 자체가 하나의 죄로 여겨진다. 남들보다 무언가 하나 덜 있거나 더 있는 사람들, 남들과 완전히 다르게 생긴 무언가 있는 사람들. 남들과 완전히 다른 경로로 생각하는 사람들.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으로 죄인의 낙인을 받는다.

이는 조금도 죄가 아니다. 한 사람의 형용은 가치판단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특성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도 죄를 가진 사람이 태어난다. 모멸과 상처를 미래로 점지당한 아이들이 태중에서 빛으로.

 

나는 첫 숨을 쉬는 순간부터 이미 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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