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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마뷸러스 해체양식의 비밀 (작가: 이규락, 작품정보)
리뷰어: 향초인형, 22년 7월, 조회 86

*이 리뷰는 스포가 많으니, 소설을 먼저 읽고 오시길 권해드립니다. ^^

 

분량은 136매였으나, 소설의 복잡함을 따라가는 기분은 중편에 버금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눈이 호강해 좋아하는 영화 ‘인셉션’의 줄거리를 좇느라 벅찼던 것처럼. 물론 재미없었으면 중간에 그만뒀겠지만 시간 투자가 절대 아깝지 않는 소설이라 자진해서 리뷰까지 내처 쓴다.

일단 소설의 줄거리부터 간단히 정리해보고 가겠다. 혹시나 모를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스포를 자제하는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잘라내는 장면이 많다.

개요를 정리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소설이 처음인 것을 솔직히 적겠다. 일부러 모두가 찾고 있는 추파카브라의 수첩 내용의 비밀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개요에서 밝히지 않았다. 맨마지막에 나오니 소설의 끝을 읽은 독자는 알 것이고 모르는 분은 직접 확인하실 기회를 남긴다.

소설을 몇 번씩 읽으면서 다시 느낀 게 이 소설은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비밀이 까고 까도 또 나온다. 그래서 그 비밀을 마침내 알게 되는 과정이 복잡한 미스터리 소설의 전개를 좇아가는 것 같은 인상이 깊다. 실제로도 미스터리들로 구축된 세계관이고 유쾌한 문체와 분위기가 일관되지만 내용 자체만 두고 보면 꽤 디스토피아적이다.

인공거미 같은 인공종족과 늑대인간, 뱀파이어, 구울, 사스콰치, 골렘, 미노타우르스, 인간, 마도사(마법사, 마술사, 연금술사) 등 판타지계 등장하는 온갖 전설과 허구의 종족들이 총 동원하지만 한데 어울려 무대를 형성하는 까마귀 시는 얼핏 보면 지금 현실 세상을 은유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배제하고 작품에 드러난 표면에만 충실하고 싶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도시명, ‘마뷸러스 해체 양식’이라는 콘텐츠 명등이 재밌다. 스파이, 배신자, 사기꾼, 연쇄 범죄, 회사에 얽힌 음모,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정부와 정책이 선택한 악마와의 계약 등 온갖 부패가 넘치는 이 도시가 낳은 고도의 문화양식 역시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채무를 변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다.

결국은 까마귀 도시에 사는 시민들은 모두가 지옥행으로 운명지어져 있고 영혼이 없는 것들이나 영혼의 주체가 사라진 껍데기, 또는 마뷸러스라는 유령회사처럼 진짜 유령만 떠돌고 도시만 빚 없이 깔끔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해체’ 양식이란 말 자체에 이미 도시의 운명이 숨겨져 있다.

채무(자본)와 영혼(가치, 정신)을 바꾸는 중개자 역할에 소위 마도사, 강령술사 등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판타지 세계의 아이러니다. 마법, 연금술 등은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갈고 닦는 기술이 아닌가.

거기에 사이비인 영혼소환술자들이 끼어들었다고 해서 마도사와 사이비 간에 정의가 한쪽으로 기우는가. 사이비가 이미 가짜를 내포하는 단어니 마도사에게 정의의 저울을 조금 기울일 법도 하지만 작가는 개머리판을 통해 정의도, 맹목적인 충성심과 보상에 대한 기대로 흠집을 내서 가차없이 비판한다. 개머리판을 통해 보여지는 것은 둘 사이에 특별히 한쪽이 더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판타지 세계는 판타지보다 현실을 재현한 것에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사견으로 일소하고자 한다.

주인공인 책벌레 즉 인공종족이 노예 상태에서 자유인으로 권리를 부여받는 과정이나 호문쿨루스가 소수의 지적 주체로 분류되어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의적이거나 자발적인 권리 투쟁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그 자격을 인정받고 증명되어야(골렘은 자기 변호를 할 수 있어야만 시민권을 획득)한다는 대목은 눈길을 끈다.

캐릭터로 활용된 인간 외의 종족들에게 주체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증명해야 주어지는 자유권이란 점이 상충되는 것 같아 또 다른 아이러니인가 갸웃거리게 된다. 이와 관련된 또다른 대목은 호문쿨루스가 적은 확률로 시민들과 준하는 똑똑한 지성체라서 강제 해산을 당했다는 부분이 반만 진실이라고 살짝 언급되어 있다. 이 부분은 마치 어떤 내용을 전개하려다 멈추고 거죽만 건드린 느낌이라 아쉽다. 다른 소설에서 본격적으로 진전된 세계관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투명벽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예전에 4차원에서 3차원을 바라보면 마치 영화에서 필름이 상영되는 걸 보는 것과 같다는 글을 읽은 것이 떠올라 좋았다. 순식간에 그 부분만으로도 SF로 전환되었다가 바뀌는 느낌이라서 신선했다.

‘마뷸러스 해체 양식’이 문화 콘텐츠의 이름이라는 점과 관련해서 어수선하고 긴 리뷰의 마지막을 정리하고자 한다.

문화 콘텐츠의 역할은 무엇인가? 비리와 음모를 가리기 위한 정부의 전술 무기인가, 아니면 스스로 영혼을 납세하기 위해 짜여진 덫인가, 이 소설에선 별 생각 없이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기며 열광하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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