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한 번도 인간의 친구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평온한 안식을 방해하는 공범자였을 뿐이다.”
번역이 맞나 모르겠네요. 조셉 콘래드의 <구출(The Rescue)>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책을 읽은 게 아니라 Sunless Sea 라는 게임의 오프닝에서 본 문구입니다. 하지만 해양판타지, <바다의 비밀>이라는 소설이 속할 수 있는 그 장르에 대한 표현으로 적합해 보여 인용해 봤습니다.
해양판타지가 정확하게 정의된 하부 장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떠오르는 작품들의 범위도 넓습니다. <원피스> 같은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크툴루 신화같은 공포와 절망의 끝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스시 시리즈처럼 안개에 싸인 미지의 세계를 노래하는 이야기도 해양판타지라고 분류할 수 있겠네요.
제가 번역해 놓은 위 인용문구에서 ‘평온한 안식을 방해하는’의 원문은 ‘restlessness’ 입니다. 이 단어에 담긴 중의적인 분위기를 한 단어로 도저히 표현하지 못하고 길게 풀어써 버렸습니다. 인용을 한 이유도 바로 저 단어 ‘restlessness’ 때문입니다. 불안, 동요와 같은 어두운 이미지도 있지만, 쉬지 않음, 들뜸과 같은 무언가 꿈과 모험에 연관되는 단어로도 번역될 수 있는 이 단어가 해양판타지라는 장르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단하고 안정적인 육지를 박차고 바다로 나가는, 혹은 나가게 만드는 그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해양판타지의 핵심이겠죠.
그런 면에서 <바다의 비밀>은 굉장히 흥미롭고도 놀라운 글입니다. 연재지만 다 합쳐 46페이지의 단편인 이 글은 그 짧은 내용 속에 제가 줄줄이 늘어 놓은 요소들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불안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심해의 공포와 유쾌한 뱃사람들을 건드리더니, 갑자기 중세 기사와 로봇이 결합된 캐릭터가 등장하여 분위기를 바꿔 버립니다. SF에 가까울 정도로 치닫던 이야기는 짧은 분량 안에서 적절히 마무리 됩니다.
정신 없이 던져진 복선들이 모두 회수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짧은 분량에서는 애초에 무리였겠지요. 대단히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음에도 장면의 전환이 희한할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소재들은 해양판타지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입니다.
해양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도, 아예 처음 들어보시는 분도 부담없이 유쾌하게 읽어 볼 수 있는 단편같은 연재물입니다. 아마 읽고 나시면 조금은 ‘restless’ 해 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