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거나 불경스럽거나 또는 둘 다인 이야기를 양식미를 갖추고 풀어내는 태도가 번연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때론 그 형식미가 이야기의 인상을 흐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본작 같은 경우는 고딕 호러 소재를 다루는데에 최적의 서술 방식으로 끝까지 격조있게 풀어내는 솜씨가 너무나도 매끈하니 만족스러웠다.
고딕 소설은 왜 인지 서간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 그 맛이 더 살아 나는데 독자를 가상의 수신인으로 삼는 그 설정 자체가 더 큰 몰입감을 가져다 주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뻘스러운 생각이지만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유모가 이 정도의 문재를 보유하는게 가능한가? 그렇다면 왜 작가를 하지 않고 유모를 하고 있을까? 같은 잡생각을 하게 만드는건 좀 부정적인 효과일테고..
본작의 이야기 자체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명암의 묘사에 집중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대비되는 상징들, 이를테면 임신과 죽음, 아이와 어른, 순수함과 외도 같은것들이 딱딱 대구를 이르며 제시되고 있고 이런 대비들을 받쳐주는 신비롭고 작가의 광대한 지식들에 감탄하게 만드는 기재들의 사용도 매우 효율적이다.
이런 대비들이 비교적 평이하다면 평이한 이야기에 강렬한 인상을 불러 넣어주는데 한편으로는 타부시되고 불쾌한 소재 자체가 본작의 감상에 지장을 줄수도 있지 않을까 염려 스럽기도 하다.
적어도 번연 작가의 팬으로서 나는 이 모든것을 만족스럽게 즐겼다. 누구도 언급하고 접하기 싫어하는 소재를 복합적으로 다 때려넣은 이야기를 쓰면서 외연만은 아름답고 깔끔하게 포장해 낸 작가의 솜씨와 사악함에 감탄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