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식의 이해와 오해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쓴 리뷰 공모(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공모채택

대상작품: 젠더전쟁 레크 (작가: 조나단, 작품정보)
리뷰어: 사피엔스, 22년 3월, 조회 179

남자와 여자가 나뉘어서 전쟁을 벌인다. SF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죠. 저도 비슷한 설정으로 장편을 하나 써 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 관심이 갔고 리뷰까지 쓰게 됐습니다.

 

처음 읽고 느낀 점을 말하자면,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쓰인 환상동화’ 같다이고, 두 번 읽고 느낀 점은 작가가 쓰려는 주제의식이나 의도가 뭔지는 알겠지만 설정이나 전개 상 나이브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몇 군데 보인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결말 부분은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아쉬운 부분을 몇 가지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미리 사과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아주 많이 포함돼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 현재 여자와 남자들은 매일같이 지지고 볶으면서도 함께 살기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고로, 전 세계의 남자와 여자가 딱 갈려서 싸울 정도가 되려면 남혐여혐 인터넷 댓글보다는 훨씬훨씬 심각한 원인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면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이 삽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도 각자가 느끼는 감정도 각자가 하는 생각도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해서,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정신없을 정도로 마구 뒤엉켜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인터넷으로 남혐 댓글을 다는 여자가 실생활에서는 남편과 아버지와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본인이 당해온 남녀 차별에 분개하면서도 아들과 며느리를 차별하는 여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 어느 남자가 집에서는 가부장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바깥에서는 남녀 차별을 서슴지 않는 남자가 자기 딸한테는 아주 각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남자와 여자 간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느 편에 서게 될까요? 과연 어느 편에 서긴 할까요?

 

2. 남혐과 여혐을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아쉽네요. 남혐과 여혐은 성적 지향에서 온 게 아닌데 하는, 오해의 여지를 줄 수가 있겠다는 우려가 듭니다.

남성이 여성을 억압한 세월은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살아온 세월과 같을 것입니다. 특히나 농경을 시작하면서 더욱 두드러졌을 겁니다. 오랜 세월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 억압과 혐오를 받고 살아왔고, 최근에야 목소리를 내며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자리를 빼앗긴다고,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남자들이 많아졌고 그리하여 여혐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그에 대항해 나타난 것이 남혐입니다. 모르시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양 진영이 서로를 혐오한다고만 나오고 왜 서로를 혐오하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짧게 언급이 돼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님이 의도하신 부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 진영이 나뉘게 된 역사를 설명할 때 굉장히 남성주의적인 시각으로 표현을 하신 걸 보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작품 속의 남자들은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거죠.

 

그런 세상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공존하던 시대는 당연히 혼란스러웠다. 남자라면 다들 알다시피, 혼란의 원인은 대개 여자들이었다. 시기와 질투, 과도한 자기애, 신경증적 조울증. 여자들은 자기들 문제나 욕구불만을 남자들 탓으로 돌렸고, 원망하고 비난했다. 나아가 남자를 비하하고 혐오하기에 이르렀다.

 

저는 두 번 읽고 나서야 작가님의 의도가 보이더라고요. 그럼에도, 여혐 때문에 불과 백 년 만에 남자 전체가 게이가 돼 버렸다는 설정은 역시 뭔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여혐과 남혐은 지배와 핍박의 구도에서 나왔지 성적 지향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제가 이 리뷰를 작성하게 된 이유인데요. 사실 1번과 2번은 SF니까 그래, 현재 세상이 아니잖아! 라고 하면 크게 할 말은 없어요. 하지만 말입니다. 이건 정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지혜와 제우가 처음에 경계하다 섹스 세 번을 통하여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는 설정이 어라, 이건 좀 아닌데 싶다는 거죠. 독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섹스는 화합의 도구야! 부부싸움은 역시 칼로 물 베기지! 같은….

만일에 마음을 연 게 제우만의 느낌이었고 지혜가 마음을 열었다는 게 제우의 착각이었다면 이 역시 작가님이 남자들의 성적 환상에 대해 표현하려 하신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글만 봐서는 지혜도 실제로 마음을 연 것 같습니다. 이름을 알려줬으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 다 마음을 열었다는 전제 하에서 아래의 언급을 이어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다가는 19금이 되겠어서 간단히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일단, 두 사람 다 첫 경험입니다. 지혜의 이전 경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요, 제우는 남자하고만 경험이 있으니 이성간의 섹스라는 점에서 보면 어쨌든 둘 다 첫 경험이죠. 근데 첫 경험이 너무 쉽게 혐오스러운 일에서 기분 좋은 일로 넘어갔네요?! 지혜 쪽에서는 분명히 신체적인 고통이 있었을 겁니다. 임신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거고요. 남자의 몸이 침범해 온다는 굴욕감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묘사가 전혀 없네요. 제우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지혜의 심리 묘사가 없을 수도 있지만, 제우가 관찰하는 지혜의 신체적인 표현 같은 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심리는 신체적인 변화나 동작으로 나타나니까요. 19금이 될까 봐 생략하신 건지, 그 둘의 관계가 기분 좋게 끝났다는 결론이 결국은 제우의 성적 환상일 뿐이었다는 점을 보여주시려는 건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이 작품을 읽고 내린 결론은, 제가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 때문에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의도를 오해할 독자가 분명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여자들과 일을 마친 남자들이 모여서 하는 언행들은 남성 심리를 굉장히 잘 표현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아 작가님의 의도가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결국은 갖게 됐어요. 그럼에도 3번은… 정말로 두 사람이 섹스를 통해 마음을 열었다는 설정이라면 저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가지 않고요, 차라리 양쪽 다 섹스가 너무 고통스러웠고 거기에서부터 대화의 물꼬가 트여서 뭔가를 깨달아갔다…라는 이야기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부족한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리뷰에 상처를 받으시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드네요. 다시 한 번 사과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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