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작품 속 화자는 부모에게 받은 학대로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맨홀로, 더럽고 냄새나는 실제 맨홀을 상대적으로 아늑하고 평화로운 보금자리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스토리만으로 보면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나이의 화자가 학대로 인해 세상에 대한 왜곡된 기억을 가지게 되는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맨홀 보다 더 처절한 현실의 기억이 실제 맨홀을 보금자리로 여기게 된다는 이야기 구성 자체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작품의 흐름상 몇 가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점이 있었다.
첫째, 작품의 핵심인 화자의 “맨홀”에 대한 인식이다. 소설에서 ‘맨홀‘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 악취가 풍기고 더러운 것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맨홀” 안으로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유치원에 갈때가 유일하게 엄마에 의해 빠진 “맨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맨홀”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 집인 것은 틀림 없었다. ”
화자는 맨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고 하면서도 맨홀의 특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즉, 화자가 인식하고 있는 맨홀은 악취가 풍기고 더러운 것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이고, 깊이가 있어 빠질 수 있고 빠지면 벗어나기 힘든 곳이다. 여자아이의 집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냄새 나는 맨홀 앞”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과연 화자는 맨홀을 모르고 있는 걸까? “노면에 지하로 사람이 출입할 수 있게 만든, 관수로나 개수로의 연락에 이용되는 원형 형태의 구멍”이라는 맨홀의 사전적 정의를 알아야만 맨홀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둘째, 용어 선택상의 실수일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작품의 흐름상 부자연스러워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목이 있어 언급하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본 작품의 화자에게는 현실의 집이 맨홀이고 실제 맨홀은 내가 발견한 새로운 집이다. 따라서 화자에게 맨홀 뚜껑은 새집의 대문이자 현관에 해당한다. 실제로 화자는 여자아이에게 새집의 문을 닫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어른들이 화자를 찾아오는 대목에서 “맨홀 뚜껑이 스르륵 옆으로 밀려났다.”는 표현이 있어 흐름상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현실의 관점에서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언급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본 작품의 화자는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나이의 화자이다. 약 5세에서 많아야 7세에 해당하는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현실적 고통으로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할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도 화자가 사용하는 어휘가 작품에의 몰입을 어렵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이사 가기로 결심”, “모공 하나 하나를 뚫는 것 같은 고통”. “여자아이의 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현실적 공감대를 이룬다는 측면에서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신선하고 반전이 있는 작품의 구성이 돋보였다.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느꼈던 흐름상 부자연스러운 마이너한 부분들을 반영한다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본 리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