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행 기차>는 탐정 만영 시리즈의 단편작이다. 구한말, 유일무이한 여성 사립 탐정이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영 시리즈는 철저한 역사 고증과 신선한 캐릭터들의 대거 등장으로 눈길을 끈다. 이번 작품에서는 하얼빈행 기차에서 만난 중국인 여성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다급한 의뢰가 극의 주요 사건으로 전개된다.
시대의 피해자로 남편에게 맞고 살면서도 이혼은커녕 자기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는 림웨이가 바로 그 중국인 여성이다. 그녀는 당시 흔하게 내려오던 중국의 풍습인 전족으로 인해 제대로 걷고 뛸 수 없음에도, 달리는 기차 안에서 탈출하여 남편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 임시 의뢰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만영은 기꺼이 림웨이의 조력자가 돼 그녀의 계획을 돕고자 한다.
조선인과 중국인 여성이 의기투합해 현실에 저항한다는 전제는 묘하게 매력적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유능한 사립 탐정으로 인정받기까지 무수한 허들을 뛰어넘어야 했던 만영과 아버지와 남편의 때깔 좋은 소유물로 한평생 자기 의지대로 살 수 없었던 림웨이. 국적을 막론한 여성들의 자유에 대한 짙은 갈망은 동질감으로 한 데 묶여진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말부에 외부로 뚫려있는 똥통에 몸을 구겨넣어 극적으로 탈출한 림웨이가 멀어져 가는 기차를 향해 ‘나는 자유다’ 소리치던 때이다. 더러운 오물을 가득 쓰고도 연연치 않으며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은 남편으로부터의 해방이 얼마나 간절한 열망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 옛날 한국의 뒷간이 생각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적인 것들의 재현으로 중국 역사와 문화의 개입으로 자칫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점을 영리하게 해소했다.
추리소설과 스릴러소설의 한계는 대가들로부터 전해내려온 클리셰를 깨는 것이다. ‘달리는 기차 안’이란 소설의 배경과 ‘탐정물’이란 제재를 생각했을 때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생각나는 것처럼. <하얼빈행 기차>의 첫인상은 애거서 크리스티였지만. 끝인상은 단지 만영 시리즈 그 자체였다. 단편이란 분량이 유일한 흠이었던 탐정물. 여성 서사에 진심인, 작가의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