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여자, 자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존재한 수많은 ‘그녀들’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높임과 낮춤에 따라, 존경과 겸양에 따라 누군가를 부르는 단어 사이에는 미묘한 어감의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여성을 가리키는 말 중 연대와 사랑을 논할 때 종종 사용되는 ‘자매’는 본래 여자 형제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사회적으로 여성 간의 유대감을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한다. 연대의 역사가 있는 여성들의 한편에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도 있었다. 본래의 존재 이상으로 여성을 해석하는 동시에 왜곡하려 드는 수많은 폭력에 맞서 그녀들이 선택한 것은 ‘자매’ 집단의 형성이었다. 수많은 단체행동과 시위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페미니즘 담론을 잠시 내려놓고서라도 은근하고도 직접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용기가 된 자매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다.
그러므로 이준 작가의 소설 ‘자매의 탄생’은 예고된 바, 다양한 개별 여성이 공유하는 일상 안에서 가장 가볍지만 필요한 대화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자매(姊妹)
‘자매의 탄생’에서 보이는 여성 캐릭터들은 트랜스젠더와 여성애, 이성애를 두루 아우른다. (이 소설에서 개별 인물의 정체성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특정 성별이나 성애의 유형을 지정하지는 않겠다) 브래지어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 그렇지 않은 여성. 여자를 사랑하는 여성,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 그렇지 않은 여성.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성. 이준 작가의 소설에는 다양한 ‘그녀들’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그들을 스펙트럼을 유심히 본 경험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어색하게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가 그 불편함마저 개인의 속성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를 기다린다. 그럴 때 이 소설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단편 속 여성들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낸다. 그녀들은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발화하고 세계를 받아들인다. 이를 테면 브래지어가 그렇다. 혜진은 여학생을 만나기 이전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고려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근로장학생’이라는 그 여학생은 혜진에게 새로운 길을 제안한다. 그리고 한편에는 혜진을 보고 “눈이 썩었”다는 동생 리아가 있다. 리아는 “여자로 태어나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여자로 길러지는 게 어떤 건지”모른다. 하지만 혜진 역시 리아의 삶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이 이 복잡다단한 층위의 대화는 의미를 얻는다. 만약 여성이 브래지어를 착용해야만 한다는 의견이 ‘한남’으로 명명되는 남성의 목소리로 발화되었다면, 그 장면은 반드시 불편하다(그리고 불편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하는, 착용하고 싶은 ‘여성’의 주장을 함께 담는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브래지어를 단순히 여성 억압의 전유물로 폐기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브래지어 착용을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인물 중 리아를 좀 더 깊이 살펴보자. 리아는 성확정 수술1을 받은 여성이지만 군대에 간다. 하이힐을 신고 한껏 치장한 리아의 모습은 그녀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남성 이미지의 대표걱인 군대와 어울리지 않는 리아는 이질감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보인다. 그 과정에서 모욕적인 성희롱과 검열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고 여군의 앞에서 발가벗은 채 서 있어야 했다. 독자는 자신의 생각보다 성확정 수술을 받은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폭력이 입체적임을 사실적으로 깨닫는다. 그녀들이 마주하는 차별의 시선은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사회적 규범이, 그리고 여전히 갇힌 시선이 리아에게 주는 기묘한 억압과 불필요한 수준의 억압이 이 소설의 ‘군대’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리아 이상으로, 소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혜진이다. 리아와 ‘근로장학생’은 모두 혜진을 변화시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혜진은 그들 모두와 연관 있다. 밝고 활달한 리아와 조금 다른 ‘근로장학생’의 이미지는 혜진에게 잠시 그녀에게 익숙하던 세상과 거리를 둘 기회를 준다. 혜진은 ‘근로장학생’의 행동과 대담함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알았던 ‘무언가’의 균열을 경험한다. 만약 그녀가 브래지어 얘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여성의 몸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없었다면, 혜진의 감정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에게는 이 대화로 인해 혜진과 리아가 싸우게 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혜진은 그녀의 세상과, 고정되어 있던 관념과 싸웠다고 볼 수 있다.
‘자매의 탄생’은 인물 간 상황의 얽힘이 퍼즐처럼 맞아들어간다. 한 사람의 욕망 끝에는 다른 인물이 있다. 젠더 디스포리아가 없는 몸을 원하는 리아의 앞에는 혜진이 있고, 혜진의 사랑 끝에는 ‘근로장학생’이 있다. 그러나 이 사슬의 가장 끝에 있던 근로장학생은 ‘한남’이라 불렀던 남자친구를 선택한다. 소설의 결말부에서는 인물의 욕망이 거꾸로 회귀한다. 리아에서 혜진, 혜진에서 ‘근로장학생’을 향하던 화살표는 중간에서 끊어져 방향을 바꾼다. 이 감정의 변화 중심에는 혜진이 있다. 혜진은 소설 속 사슬을 완전히 틀어버린다. 실연과 유사한 감정을 겪은 혜진에게 리아가 나타난다. ‘근로장학생’이 아닌 리아 쪽으로 마음을 돌려놓은 혜진의 모습에서 비로소 편안함이 느껴진다.
‘자매’의 사이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 인생이 그렇듯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만나고 틀어지고 헤어진 후 재회한다. 리아와 혜진이 완전한 남남이 될 수 없던 이유는 그녀들이 ‘자매’였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든, 설령 ‘여성’과 그 몸에 대한 판단이 다르더라도 자매는 손을 잡고 나아간다. 여성들의 의견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우리가 모두 비슷한 육체를 가지고 살더라도 서로의 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처럼. 각자의 경험에서 최대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할 뿐이다. 그것이 반드시 옳거나 틀린 것만은 아닐 거라고 말하는 용감한 소설이야말로 ‘자매의 탄생’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반드시, 탄생(誕生)
이준 작가가 ‘자매’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그럼에도 우리가 자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닐까. 단순한 감정의 회귀가 아닌 재회의 결말을 쓰면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비로소 이런 유형의 자매도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소설을 모두 읽고도 혜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독자는 리아와 언니 동생하며 티격대는 둘의 일상이 더 이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아마도 이런 자매가 나의 주변에도 반드시 있으리라. 혜진은 “요망한 년”에게 상심했지만, 그 여학생은 혜진의 시선 지평을 넓혀 주었다. 리아는 혜진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모진 말을 뱉었지만, 돌아와 다시 그녀를 사랑해 주었다. 사람에게는 한 가지 면만 있지 않다.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이상의 무수한 특징이 우리에게는 있다. ‘브래지어’라는 단어로, ‘입영 통지서’라는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나와 당신 사이의 무수한 간극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차 있을까.
비로소 탄생한 이 이야기는 혜진과 리아의 삶에서 지극히 짧은 단면이지만, 그들 생의 굴곡을 슬쩍 엿볼 수 있었다. 만약 그녀들의 관계가 이어진다면, 그리고 계속된다면 어떤 ‘자매’의 생활이 글로 쓰일까. 끈질긴 감정의 연속과 강약의 조절이 혜진을 중심으로 모아진다. 거기에서 비로소 파생될 ‘자매’의 탄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 간의 뒷이야기를 갈망하게 되는 건 이 소설이 그들의 서사를 협소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들이 계속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얽히고설키는 무수한 관계의 그물 안에서, 빛났다 꺼졌다 다시 빛나는 무수한 불빛의 색은 무지갯빛이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이름, 나와 당신이 발 디딘 자리를 알리는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