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낀 적이 다들 한번은 있을 것이다. 당장 내일이 시험이라 공부해야 할 것이 산더미라거나,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있는데 준비가 미처 다 되지 않았을 때라거나, 서류 제출기한이 임박했는데 서류를 다 꾸미지 못했을 때라거나.
이럴 때 사람들은 가장 간편하고 빠른 방법을 선택한다. 바로 잠을 줄이는 것. 성인 기준으로 평균 수면 시간은 하루에 6~8시간이라고 하니, 잠을 자지 않는다면 최소한 6시간은 더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그렇게 확보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맹목>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약이 등장한다. 올나이트(Allnight)는 아데노신을 ATP로 합성하는 과정을 촉진시켜 사람의 수면 시간을 성공적으로 줄인다. 과다섭취하면 저혈당, 식욕증가, 충혈, 환각이나 섬망 등의 증상을 겪을 수 있으므로 복용 방법에 따라 권장량만 복용하도록 설명서에 적혀있지만 과연 사람들이 지시대로 복약할까?
아니나다를까, 복용자 중 다수는 복약지도는 아랑곳않고 올나이트를 남용한다. 당장 눈 앞에 닥친 일이 급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게 급하고 돈을 버는 일이 급하다. 그런데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부작용, 그것도 그렇게까지 심각해보이지 않는 부작용을 누가 신경이나 쓸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은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닌걸.
게다가 생계가 급한 사람들만 올나이트를 복용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1점이라도 성적을 올리고 싶은 수험생들, 조금이라도 재산을 늘려보고 싶은 투자자들, 그저 신나게 놀고 싶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올나이트를 남용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플리핑 환자들이 대거 발생하면서 사회가 극도로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말이 플리핑 환자지, 그냥 좀비다.
여기서 등장하는 올나이트라는 장치가 있든 없든, 현재 우리 사회와 별다른 차이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은 야경이 무척 아름다운 나라라고들 한다. 그 야경 이면에는 불을 밝히고 쉬지도 못하고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있다. 잠을 통해 몸과 정신에 휴식을 주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가계를 꾸리기 위해, 미래를 위해,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잠도 줄여가며 극한으로 치닫는 경쟁에 참여한다. 그들을 보면 맹렬하게 하나의 목표만 보고 돌진하는 플리핑 환자같다.
그리고 그런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가 있다. 말로는 꿈을 찾고 자아를 찾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라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마련해주지 않으면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무책임하다. 올나이트를 일반의약품으로 허가하여 사람들을 대량으로 좀비로 만들어버린 <맹목> 속 사회와 뭐가 다른가?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갈수록 화가 많아지고 예민해지는 것 같다. 예전이라면 허허 웃고 넘겼을 일도 꼬투리를 잡아 집요하게 공격한다. 흡사 올나이트를 남용하다 어느 순간 폭발하는 플리핑 환자들과 비슷해보인다. 소설 속 대한민국은 올나이트의 유통을 금지하고 구속을 통해 강제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사람들을 겨우 치료했다. 그러나 현실의 대한민국은? 올나이트가 없으니 금지해야 할 약도 없고 사람들에게 휴식을 강제하지도 못한다.
<맹목> 속 대한민국은 플리핑 환자들이 대거 발생하는 형식으로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터져나왔지만 현실 속 대한민국은 차곡차곡 누적된 자극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현상으로 터져나올지 모른다. 흡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쥐고 있는 것 같다. 도화선이 타들어가고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보이는데 언제 터질지는 모르는.
적당한 휴식을 취할 때 신체적인 컨디션은 물론 일에서도 훨씬 능률, 효율이 좋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는 혹시나 뒤처질까봐 쉬지도 못하고 밤새도록 불을 켜두어야만 하는 사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현서와 다은이 생각난다.
“응. 우린 자는 걸 좋아해서 올나이트를 안 먹거든. 기분이 안좋거나 어디가 아프면 우리 엄마아빠는 한숨 자라고 해.”
어릴 적부터 다은에게 잠이란 만병통치약과도 같았기에. 울적하거나 아플 때 잠을 자면 씻은듯이 괜찮아졌다.
밤샘을 할지 수면을 취할지 그것은 우리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