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본적으로 독서습관이 잡식성입니다만, 아주 안 읽는 건 없어도 다른 것보다 즐겨 읽는 건 있습니다. 대개는 조금씩 무게감이 있는 걸 찾는 편이죠. 그렇다고 밤마다 제임스 조이스 같은 걸 읽는다는 소린 아니고, 유산소와 무산소 사이에서 크로스핏 비슷한 걸 추구한다고 할지. 딱히 어떤 걸 무게감 있다고 하는지 묻는다면 설명은 궁합니다만, 아무튼 라이트 노벨은 여간해서는 손을 안 대는 편입니다. 주변에서 다 아는 것 같은 나혼자만 레벨업이나 전독시, 재혼황후 등도 제목만 들어서 압니다. 당연히 무슨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손이 안 가는거죠. 변명하자면 행성급 대스타 BTS의 노래도 찾아서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무슨 힙스터 감성 자랑질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매우 생소한 분야임에도 별다른 저항감 없이 계속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꺼낸 이야기입니다. 원래 진짜 좋은 물건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좋아 보이는 법이죠. 그러니 간만에 영업이나 하렵니다.
귀신같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읽고 보셔도 별로 상관 없을지도?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 재아는 서울에 집을 샀습니다. 이미 판타지죠. 서사의 핍진성을 더하기 위해 귀신 나오는 집이라 싸게 샀다는 설정이 붙습니다. 그러나 공자님께서 가정맹어호라 말씀하시었듯, 수도권의 가혹한 주택 가격 상승은 귀신보다 무섭습니다. 주인공 역시 처음에는 내 집에서 나가라는 귀신, 아린의 기세에 놀라지만, 곧 귀신에게 명의신탁도 인정되지 아니하는 등기의 거룩함을 깨닫게 해 줍니다. 뭘로? 머리끄댕이로. 그대로 주인공의 퇴마물(물리)이 될 것 같았던 이야기는 주인공이 귀신의 딱한 처지에 공감하면서 귀신과의 동거물이 됩니다.
그리고 집과 더불어 주인공의 양대 행동반경인 회사에서는 뉴페이스 신입들과 또한 뉴페이스인 본부장이 등장합니다. 신입들은 신입답게 자잘한 사고를 치고, 본부장은 귀안을 개안한 주인공의 눈에 여우 꼬리를 달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말그대로 주인공에게 꼬리를 치기 시작하는데 게임 중독으로 연애세포가 다 죽어버린 주인공의 방어력은 메인탱커 잡은 팔라딘을 방불케 합니다. 그리고 저승사자도 나오고 아 막 들이대는 신입도 나오고 본부장 엄마(무섭다)도 나오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알차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읽다 보면 어느새 최신화까지 와 있습니다.
낚인 고기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초반의 훅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아직 덜 살아 보고 하는 말이지만, 집을 산다는 것은 결혼과 더불어 삶의 양대 과제로 통하죠. 대개의 경우 정년 맞을 나이가 될 때까지 그 두 가지 사건의 뒷수습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보자 마자 ‘아니, 어떻게? 비결좀!’이라는 생각과 함께 정신없이 도입부를 읽게 됩니다.
물론 갑자기 닌자가 등장해서 다 죽인다든지 일단 들여다보게 만들 방법은 많습니다. 끌고 가는 게 본게임이겠죠. 본 작품의 견인 능력은 역시 현실계 판타지가 그렇듯 일상적 요소와 비일상적 요소의 적절한 조합에서 옵니다. 집에 귀신이 있지만 어쨌든 일퀘는 깨야 합니다. 직장에선 게임 캐릭터보다 스탯이 출중한 상사가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핑크핑크한 환상도 있지만 웬지 나한테만 몰리는 업무와 지랄맞은 뒷담화, 사고치는 후배 같은 짠내나는 요소들도 있습니다.
이런 두 흥미 요소들을 잘 엮기 위해서는 당연히 적절한 플룻 배치와 그걸 매끄럽게 닦아나갈 문장이 필요한데, 사실 제가 이쪽 분야를 읽는데 상당한 장벽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집을 샀다에서는 그 부분에서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전지적 시점인데도 은근슬쩍 재아나 다른 인물의 사고를 서술에 섞어넣는 부분이 많아서 줌렌즈처럼 필요할 때마다 슥슥 몰입할 대상이 전환된 점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가는 인물들이 억지로 어딘가에 말려드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각기 특징이 있는 인물들이 자기 자리에서 할 일 – 사고 치기를 하다 보니 사건도 무리 없이 전개되어 갑니다.
꼭 아직 빌드업 단계의 작품이라서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묘사가 세밀하거나 참신하다기 보다는 인물이 대사를 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제공된다는 느낌이라, 모종의 시나리오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개가 등장할 때마다 황금빛 머리카락과 아이스블루 색상의 눈동자를 강조하는 것 보다는(그만해 요시키야…) 약간은 궁금증이 남더라도 경쾌하게 가는 게 낫다고 봅니다. 결국 이 이야기의 성패는 지금 한창 쌓고 있는 의문들이 어느 방향으로 풀리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리뷰는 감상과 추천으로 남겨놓고자 합니다.
귀신이 있다면, 이라는 전제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귀신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저는 회의적인 편입니다. 귀신이 있다면 절대로 저렇게 멀쩡할 리가 없는 인간들이 수두룩하게 돌아다니거든요. 꼭 귀신이 보인다거나 귀신이 괴롭힌다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딱히 귀신이 해코지 할 이유도 없어보이거나 귀신까지 나서기엔 상당히 시시한 혐의가 있거나 하더군요. 반면 누굴 보면 그러면 안되지 싶은데 뭔가 대충 건강하게 살만큼 살다가 그럭저럭 편안히 죽고 그러죠. 정말 귀신은 뭐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