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소설은 엽편의 양식과 사뭇 닮아 있습니다. (이 소설은 단편이긴 하지만 분량의 양식상으론 엽편과 단편의 경계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 것은 엽편 소설이 대다수 가지게 되는 반전의 형태가 호러에서는 금기와 위반의 전복의 형태와 사뭇 닮아 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다만 엽편에서는 사태를 기지 넘치는 국면으로 전복시킨다고 한다면, 호러에서는 일상의 경계를 침식하다가 끝내 좀이 슬어 무너뜨리는 것 같습니다.
여덟 연꽃잎 펼쳐진 하늘 밑에서는 불당이 세워진 평범한 시골 마을을 그립니다. 이 공간은 윗 마을과 아랫 마을이 나뉘어 있고 알력 다툼도 있는 그런 곳입니다. 이는 푸근하고 낭만적인 이미지의 가상의 시골과는 다릅니다. 욕망이 살아 있는 현실 속의 세상입니다. 동시에 이는 이 욕망이 파국을 향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반전은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욕망이 선연하다면 그 것을 추동하여 돌진하기 때문입니다.
이 욕망은 단계처럼 이루어져 있는데, 위의 욕망은 세상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면,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에 이르러서는 파국이 암시되는 기괴한 현실을 묘사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이 부분에서 평범했던 현실은 전복과 위반이 도사리는 파국이 내포된 현실이 됩니다. 이를 위하여 이 현실은 6.25와 사상의 대립의 피해자들의 피값을 제시합니다. 동시에, 윗 마을과 아랫 마을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이 갈등은 땅을 줌으로써 일부 해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공기에 혈향이 달라붙듯 사실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 욕망은 일종의 자격으로써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국을 목도 하게 될 일종의 자격으로요. 이에 이해관계와 적의가 상호 침식하고 이를 불당이라는 매개체가 억제하는 듯 보입니다. 이 파국을 서술하는 사람이 영원히 이 마을에 속하지 않을 ‘외부인’인 ‘나’인 것은 의미심장 합니다. 실제로 사건을 밝히는 이는 정교수 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마을의 파국의 종착역인 사람이자 관계자이기 때문에, 전복과 위반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파국에 휩싸이며, 이 사건의 전말을 누군가 밝히기를 염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적인 관계를 가진 ‘나’가 그 일말의 관계성으로 말미암아 사태를 추적해나가며, 파국의 진실에 이른 순간 휩쓸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반전’은 이 현실적 파국이 금기와 전복의 위반과 상관 관계가 있는 지는 애매한 단계에서 그치기 때문에,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 이 둘의 근본적인 상관 관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이 파국을 맞이하게 된 간접적인 환경으로써 기여하고는 있습니다.) 다만 이 파국을 암시하는 부분은, 의외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폭우로 환원됩니다. 끝없이 내리는 듯한 비에 마을이 침식되는 것은 전염병 역시 유체화된 재앙으로 침윤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것은 무형의 불안에 끝없이 휩싸이는 리퀴드 모더니티를 사는 현대인을 사뭇 반영하는 듯 합니다.
어쩌면, 이 파국이 이루어진 것은, 금기가 이 유체적인 적대적 욕망의 상호 침식 행위를 억제하다가 그 수명을 다해 버려서지 않을까요. 허나 이는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