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살렘스 롯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네게 먹을 것을 주는 자가 바로 너의 신이다’
어디까지 발전할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문명이라 하지만, 아직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해주는 자연의 손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윤리나 철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며칠만 먹지 못 하면 인간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기 위한 본능에 모든 걸 맡기겠죠.
소설 ‘폭설’은 자연의 힘(또는 인간의 실수)앞에 한없이 무력해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처절하게 그려낸 호러물입니다.
작품의 초반부만 봐서는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 지 짐작도 하기 힘들 정도로 이야기의 속도는 느린 편인데, 전혀 지루해지거나 몰입도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마치 우리 동네에서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풀어내는 작가님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글을 읽는 자체가 그저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건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오컬트로 가던 자연재해를 다룬 스릴러가 되던 상관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야기는 그런 예상을 모두 벗어나는, 훨씬 더 끔찍한 결말을 향해 내달리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본능에 모든 걸 맡긴 사람들을 모습을 ‘걸귀가 들렸다’ 혹은’돼지 귀신이 들렸다’라고 표현합니다. 상황의 비참함을 보면 그런 표현도 과하진 않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 제가 걱정하며 마음을 쏟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하잘것 없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나 무서운 점은 작가님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 놓으신 평화로운 마을과 선량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무너져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감정없이 표현하셨다는 점입니다. 호러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미지의 존재나 알 수 없는 현상[같은 건 이 작품에선 등장하지 않습니다. 서서히 구석에 몰리고 굶주리다 스스로 무너져가는 건 누구의 탓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처럼 보여지고, 조금이나마 남은 인간성이나 모성애는 참으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아포칼립스물보다 암울한 지옥이 대한민국의 한 조그만 산골 마을에서 펼쳐질 수도 있군요. 스티븐 킹의 ‘미스트’를 연상시키는 허무하면서도 음울한 결말 또한 매력적입니다. 이런 멋진고 끔찍한 이야기를 평화로운 산촌마을 배경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죠.
‘폭설’은 모든 면에서 단순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독자의 두려운 마음을 파고드는 재미있는 호러물입니다. 초반부의 의 약간 평이한 이야기를 지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나면 중반부터 서서히 심장을 옥죄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문장들은 간결하고 등장인물들은 정말로 어디선가 있었던 사건의 주인공들처럼 글 곳곳에서 살아 숨쉽니다.
분량 또한 긴장을 놓지 않고 완독하기에 적절하니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네요.
후반부로 가면서 설명의 친절함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독자의 상상력의 자극하는 결말 또한 아주 좋았기 때문에 크게 단점으로 느껴지지는 않네요.
폭염으로 지치는 요즘, 제목부터 더위를 식혀줄 것 같은 미스테리 호러 ‘폭설’이 독자분들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식혀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브릿G 운영진분들이 언제 계약하실 지 모르니 빨리 읽어두시는 걸 추천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