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도입부에 비해 뒤로 갈수록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화성으로의 이주 및 정착이 완료된 시점의 지구를 배경으로 합니다. 화성인들은 젊은 연구 인력을 지구에 임시로 파견했는데 ‘김유진’도 그중 한 명입니다. 김유진의 친구 ‘최지수’는 지구인이고요. 이 세계에는 고루한 ‘지구근본주의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화성으로 건너간 인간들과 그 후손을 혐오하죠. 특히 ‘마스 키드’라 불리는 화성 3세대가 지구의 아이들을 망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최지수는 엄격한 지구근본주의자 부모 아래서 자랐지만 기질적으로는 부모보다 친구 김유진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이 이야기를 미시적 층위의 세대론으로 보이게끔 하는 요인 중 하나죠.
어느 날 학교에서 강의를 듣던 중 지수는 유진이 보낸 쪽지를 받습니다. 쪽지에는 ‘같이 화성으로 가자.’고 적혀 있죠. 지구근본주의자의 집안에서 나고 자란 지수에게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이지만, 그런 현실적인 제약도 미지의 세계를 향한 지수의 호기심을 가로막지는 못합니다. 지수는 교수의 강의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쪽지 속 ‘화성’이라는 글자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고 혼자 되뇌어 봅니다. 그러다 유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나가버리자 지수도 따라나서죠. 둘은 한껏 들떠서 놀러 가려고 하지만 유진에게는 깜빡했던 다른 일정이 있었습니다. 결국 혼자 집으로 돌아온 지수는 화성인과 어울리느라 수업을 빼먹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매를 맞게 됩니다. 지구근본주의자 따위 다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지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놀라며 서둘러 마음을 추스릅니다. 화성인과 어울리다 정말 이상해져 버린 건가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기까지 하죠.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겪는 전형적인 징후입니다.
여기까지 봤을 때, 지구는 환경만 열악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도 낡았고 사고방식도 왜소하기 그지없죠. 이 이야기가 행성 개척에 성공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현시점의 한국 사회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예요. 앞서 언급한 세대론과 가정 내 정서적 학대도 모두 그런 맥락에서 의미를 갖죠. 문제는 이 이야기가 이런 주제들을 모두 담아내기엔 매우 협소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부모의 학대를 피해 달아나는 미성년의 이야기란 말이에요. 성장 서사, 독립 서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재로서 지수는 당면한 위협으로부터 수동적으로 구출되는 일 외에는 다른 사회적 함의를 지닐 수가 없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이 인물이 왜 이렇게까지 소극적으로 묘사되는지도 아직은 납득할 수 없어요.
지구근본주의자인 최지수의 부모는 오늘날 차별주의자의 이미지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습니다. 폭력적이고 반지성적이며 맹목적이에요. 그들에게 타협과 절충의 여지는 없습니다. 지적인 고민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지수가 이들과 공존할 수 없는 건 당연해요. 그런데 지수가 이들을 떠나는 과정과 결과가 모두 지나치게 수동적입니다. 도입부의 강의실에서 마냥 친구를 따라나서던 지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시종 무언가로부터 쫓기거나 누군가에 의지하는 캐릭터로 묘사되죠. 지구근본주의의 상징인 라디오를 부수는 장면도 부모가 없는 틈을 타 홧김에 저지른 일탈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워 보여요. 세대론과 가스라이팅, 차별주의를 한 번에 논하기엔 인물의 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전 이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길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가 인물에 이입할 시간도 충분히 줘야 되고요. 사실 이 작품에선 중간중간 전달되어야 할 사건이나 사연이 남았는데도 자주 이야기가 끊어진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훨씬 더 강하게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들이 지구에서의 억압된 삶을 자각한 시점 이후에 일시적 도피를 넘어 소설의 세계관 전체를 움직이는 방향으로 성장해간다면 더 단단한 서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