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기본적으로 과학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긴 하다만, 때로는 정신, 종교, 판타지의 영역까지를 크게 넘나들기도 한다. 신이라던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이다. SF적인 상상력으로 다시 쓰여진 신과 세상의 진실은 그게 얼마나 그럴듯하냐에 따라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도 한다.
작은, 일종의 도구에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을만큼 거대해지는 ‘투고처리기’에 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한 SF 단편 중 하나로 꼽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The Last Question)’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더 이 소설은 어떤 식으로 마무리를 지을지 기대되기도 했다.
이야기 초반을 장식하는 출판계와 그곳에서 종사하는 한 편집자의 이야기는 (SF와는 별개로), 출판사의 작품 검증 능력이 사실상 한계에 다달아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기는커녕 전부 살펴보지조차 못한다는 업계의 뒷사정을 드러낸 것 같아서 꽤 흥미로웠다.
거기서 이어지는 AI를 활용한 투고처리기도 자연스러웠는데, 이미 유사한 서비스나 비슷한 연구결과가 있기에 더 그렇다. 그것들을 좀 더 발전시킨듯한 투고처리기는 어쩌면 곧 올지도 모를 미래를 그린 것 같기도 했다.
도달 가능성이 엿보이는 미래의 일면을 그렸다는 점에서 중후반까지 꽤 흡입력이 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씩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나온다. 기본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그걸 가능케 할만한 상세는 제대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는 커녕 느닷없이 현실이 가상과 통합되고, 실제가 가상으로 또 가상이 실제로 순환하는 세계관을 들이밈으로써 더 따라갈 수 없게 만든다. 약인공지능이던 투고처리기를 아무런 전개없이 어느 순간부터는 강인공지능으로 그린다거나 하는 점도 계속 따라가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새삼 아시모프의 단편이 얼마나 잘 쓰인거였나 다시금 깨닫게 된다.)
투고처리기로 신과 세계관까지 가는 건 좀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적당히 빅 브라더와 인간의 잉여화 정도에서 그쳤으면 어땠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