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낯선 공간이기도 합니다. 여성에게 있어서 당연히 군대는 낯선 곳이지만, 동시에 주변인을 군대로 보내기도 하고 주변인의 주변인이 군대갔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면서 익숙해지게 됩니다. 남성들이야 당연히 친숙하게 느껴질 테지만, 당장 육해공의 군생활이 다르고 부대마다 경험담이 달라지기도 하면서 낯설게 되죠.
그러나 군대를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증언할 수 있는 점은 있습니다. 바로 ‘사고가 일어나면 은폐한다’는 점이죠. 사건을 은폐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정작 어떤 사건, 사고들이 은폐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비밀스럽고 어두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 속 군대에서는 어떤 사고, 혹은 사건이 은폐되고 있을까요? 정답은 ‘모른다’ 입니다. 당연한 사실입니다. 은폐된 사고니까요. 소설 주인공 ‘나’는 본인이 속한 군대임에도 일련의 현상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합니다. 그저 현재에 일어난 현상을 감지하고, 과거에 일어났던 현상에 대해 전해들었을 뿐입니다. 현재에 일어난 현상을 보고했으나 진상에 대해 듣지도 못하고 은폐하라고 명령받았고, 과거에 있었다는 현상조차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만 들었지, 어째서 그러한 사건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주인공의 상황은 그대로 독자에게로 전가됩니다. 소설의 여러 시점 중 3인칭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은 독자를 소설 바깥에 위치시켜 한 걸음 뒤에서 사건을 바라보도록 유도합니다. 그에 반해 선택적 시점이나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택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독자는 주인공이 알지 못하는 것은 따라서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궁금해 하는 것을 똑같이 궁금해 하고, 현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주인공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작가가 제공하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기에, 주인공은 결국 사건에 가까이 다가가기는커녕 그 변두리에만 서성거리다가 결국 소설은 종극을 맞게 됩니다. 독자 또한 소설 속에 깊이 빠진 채 의문을 품다가, 소설이 끝나면서 강제로 소설 밖으로 끌어내지게 됩니다. 마치 아주 깊게 잠이 들어 꿈을 꾸다가 누군가 갑자기 깨운 것처럼 말입니다.
소설은 끝났지만 독자는 여전히 소설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의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남은 감정의 잔향은 여운으로 바뀌어 마음 속에 남게 됩니다. 그러나 이 여운은 오랫동안 남아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끝내 밝혀내지 못한 군대 내부의 사건에 대한 의문과 진실을 알고 있는, 그러나 차마 그에 대해 묻지 못하는 불안으로 이루어진 응어리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은 군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대한 은폐와, 그 은폐를 직접 대면하지만 아무 것도 못하는 무력한 개인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외부에 알려져서도 안 되고, 외부인이라면 알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군대는 현상이 발생한 장소의 대표로서 등장했을 뿐이고,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고, 못 본 것으로 하고, 모르는 것으로 하는 일은 군대 같은 폐쇄적인 환경이 아니더라도 빈번히 발생하곤 합니다. 단지 모를 뿐이죠. 본인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으셨다면, 이 소설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그 어느 작품보다 사실적인 간접 경험을 제공할 겁니다.
사실적이고, 그래서 답답하게 느껴졌던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