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시작부터 강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 애현은 40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해서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여인(요즘 미혼 사십을 노쳐녀라 할 수 있는 지 모르겠네요)입니다. 주변의 시선과 간섭에 피곤해질 때 쯤 정 순정이라는 중년 여인을 만나고, 취미와 대화가 통하는 그녀와 급속히 친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정순정에게 뜬금없이 양아들이라는 남자가 나타나 정순정의 물건을 치우고 그녀를 치매환자 취급하는 등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데…
자꾸만 수가 늘어가는 수상한 사람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며, 애현은 그들에게서 순정과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점점 궁금증과 긴장을 더해가는 단편소설로서의 재미도 상당한데 읽고 나서의 여운도 깊게 남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 애현은 자신의 삶에 크게 불만없이 살아온 것으로 보이는데, 주변의 넘쳐나는 말들과 시선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주변의 시선과 목소리를 차단하고 외면하면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젠 동영상을 봐도 댓글부터 확인하고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 반응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애현은 자신과 취향이 맞는 순정을 만나 일말의 희망을 찾는가 싶었으나 그마저도 생각지도 않았던 존재들에게 거부당하게 되는데,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된 애현의 반응이 예상 외였고 재미있었습니다.
‘크게 나쁘지 않네?’ ‘그래서 그게 뭐?’ 정도랄까요?
그녀가 기대고 있던 존재마저 떠났다는 것에 대한 절망일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 애현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이 점차 덤덤해지고 지쳐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후반부에 어떤 반전처럼 다가오는 결말이 사실은 애현의 오랜 고민끝에 내린 결정이고 그녀의 의지로 내린 선택이라는 건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고 기억도 그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거나 가치관, 혹은 타인의 평가가 되기도 하는데 최근의 제 삶을 돌아봐도 여러가지 요소 중 타인의 평가에 많은 부분을 휘둘리고 있습니다. 타인의 긍정적 평가를 위해 오래된 내 가치관을 바꾸기도 하지요.
그렇게 나를 구성하는 것들이 외부 요인에 의해 바뀌고 버려지다 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 애현처럼 평생 나를 만들어온 것들을 쉽게 내려놓는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몹시 섬뜩해졌습니다.
모든 인류가(혹은 생명체가) 각각 쌓아온 경험과 그로 인해 얻은 지식, 사유와 기억을 공유하게 되면 그 세상은 완벽해질까요? 왠지 개념만 놓고 보면 크게 나쁠 것 같지 않은데 경험하지 않고 능동적 사유도 없이 얻어지는 지식과 경험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는 알 수가 없겠죠.
이 작품은 쉽게 읽히면서 고민도 하게 되는 캐비어와 송로 버섯 맛이 나는 간짜장 같은 멋진 작품입니다.
감히 올해의 단편 중 하나라 자신있게 추천드리고 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