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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지금 죽으러 갑니다 (작가: 정해연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사피엔스, 21년 6월, 조회 128

요 며칠 간 몰아서 읽은 작품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만큼 흡인력이 뛰어난 스릴러입니다.

일단 주인공부터가 특이한데요.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잃은 이유가 처참합니다. 주인공의 부모가 주인공을 죽이려 했고 가까스로 살아남는 과정에서 그 전의 기억을 깡그리 잊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인공인 태성은 작품 초반부터 삶에 대한 의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주인공이 어떻게든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독자가 가지게 될 예측입니다.

어쨌든 주인공은 죽고 싶어서 동반 자살 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다른 남자 둘과 여자 둘, 그리고 주인공 이렇게 다섯이 어느 산 속 별장에 모입니다. 모임 초반부터 물에 뜬 기름마냥 겉도는 캐릭터가 두 명이 있는데요. 그래서 이게 동반 자살로만 끝날 이야기가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그리고 역시나 빵빵 터지는 사건들… 그 와중에 주인공은 ‘죽고 싶다’에서 ‘살고 싶다’로 맘이 바뀝니다. 마음이 바뀌었으니 그게 또다시 원동력이 되어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겠죠? 그렇게 물흐르듯이 흘러가는 이야기입니다.

죽었다. 죽는다. 죽을 것이다. 죽고 싶다. 죽인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동사입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사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생명의 소중함을 전제에 깐 이야기이지만 단순히 그것보다는 우리는 죽음이 닥치면 어떠한 심리가 되는가, 그러한 심리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가, 우리에게 죽음이란 생명의 종말 이외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표현하고자 한 작품 같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여럿이듯이 각자에게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조금씩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종말,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장난, 누군가에게는 직업상 필요한 소재, 누군가에게는 신분 상승의 기회이지요. 이렇게 캐릭터 각자의 이야기가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또한 하나의 캐릭터가 죽음에 대해 가진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도 합니다. 바로 주인공인 태성인데요. 태성의 심리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무력한 모습, 죽음을 갈망하는 모습, 갈등하는 모습, 안도, 충격, 좌절, 죄책감 등등 태성이 자신의 처지를 관조하며 혹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느끼는 심리들이 정말 섬세하고 생생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덕분에 독자는 주인공에 빙의해 다음 사건을 기다리게 되고요. 그렇게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화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어떤 인간이 되었는가를 보며 씁쓸함 내지는 경악을 느끼게 되죠.

소설을 관통하는 또 다른 줄기는 바로 미스터리, 즉 사건입니다.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요. 주인공 태성의 삶에 대한 미스터리(기억을 잃기 전의 삶), 동반 자살 모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마지막으로 태성과 형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입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이 잘 직조된 천처럼 긴밀히 연결돼 있어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가 않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는데요. 첫 번째로는 

두 번째로는 문장이 뒤로 갈수록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작품 중반까지는 간결하고 가독성도 좋았는데요. 뒤로 갈수록 문장이 잘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후반부 퇴고를 조금 더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목에도 썼듯이, 이러한 아쉬움을 덮어버릴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스릴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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