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세계관의 결정체!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흑해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이지현, 21년 6월, 조회 123

흑해의 시작은 14세기말 불가리아의 작은 마을 리바톤으로부터다.

한없이 평온하고 느긋하고 아름답기만 한 리바톤.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한 순간에 파괴되어 500년 가까이 그 이름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불가리아의 역사는 

환생을 위해 500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뱀파이어 체르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

그리고 일본의 침략으로 모든 것을 빼앗겼던 조선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들은 주인공인 나르바가 조선과 조선 사람들에게 가지는 연민에 타당성을 부여해주고

독자에겐 높은 흡입력과 생동감을 준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안채윤 작가의 장점은

역사적 사건과 배경을 소설 안으로 끌고 들어와 픽션과 현실을 적절하게 접목시키고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판타지를 준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흑해는

안채윤 작가가 그간 다른 작품들을 통해 보여줬던 세계관의 끝판왕 같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기존의 뱀파이어물이 가지고 있던 클리셰를 모두 깨고 이 작품만의 독특한 설정들을 창조해냈다. 

 

첫번째로

뱀파이어, 드라큘라 같은 존재들이 탄생된 루마니아가 아닌 불가리아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 

두번째로

뱀파이어도 종족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종족과 그럴 수 없는 종족으로 나뉜다는 점. 

세번째로

뱀파이어에겐 영생 중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는 점. 

네번째로

모든 뱀파이어가 젊고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만큼의 나이로 성장하고 멈출 수 있다는 점.

 

이러한 설정들이 기존의 뱀파이어물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집필했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바로 주인공인 나르바 캐릭터인데,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 속 여주인공이 훌륭한 외모 + 발랄 / 엽기 / 도도 정도로만 표현되는데 반해

흑해의 나르바는 사랑하는 뱀파이어의 환생을 기다리기 위해 인간에서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어

500년을 기다리기로 결정하며 매우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체가 확실하며 두려움에 맞서는 여전사 같은 캐릭터. 

스스로의 능력으로 인간과 나라를 구원하는 그런 존재. 

 

이러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반가운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능력이 어떤 초능력이나 마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관건이다.

14세기 불가리아로 시작은 했지만 이 작품의 2/3 정도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동양적이고 고풍스러운데

이 소설의 판타지는 이러한 풍을 깨지 않는 선에서만 그려진다는 것도 매우 이상적이다.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사실 로맨스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으며,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일제가 우리에게 저질렀던 만행과 그들로부터 나를 지키고 구하고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수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면에서 흑해는 매우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였다. 

흔하디 흔한 뱀파이어물 판타지 로맨스가 아닌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인물의 인생사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 

그리고 수려한 묘사력으로 가득찬 문장들까지. 

너무 재밌게 읽었고, 종이책으로 출간이 돼서 소장할 수 있길 바라며, 반드시 시즌 2가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소설 속 구절을 소개하며 감상문을 마친다.

 

/숲으로 낮게 퍼져 나가는 체르의 음성이 비로소 나르바의 고막을 깨웠을 때, 그녀는 묘한 전율을 느꼈다. 

아킬레스건 쪽을 찔린 것처럼 복숭아뼈에서부터 찌릿함이 퍼지는 것 같기도 하고,

몸 어디선가 툭! 하고 맥이 끊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짐승의 송곳니로 우둔했던 감정선을 물린 듯한,

도대체 지금 이 기분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나르바는 서서히 그의 기운에 잠식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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