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피그말리온 설화를 모티프로 하는 미스터리입니다. 피그말리온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 섬의 조각가죠. 그가 갈라테이아를 창조해낸 동력은 동시대 여성에 대한 극심한 혐오였고요. 「피그말리온 살인사건」에서는 그 혐오의 수위가 한 층 더 높아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이 이야기에서 피그말리온에 해당하는 인물이 완벽한 여성상을 구현하기 위해 택하는 방법은 ‘살인’이니까요. 갈라테이아에 해당하는 여성 캐릭터 또한 도구적으로만 기능하고요. 이 작품이 택한 구도에서 그건 그냥 기본값입니다. 작품 외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우려할 만한 요소는 딱히 없어 보여요.
사실 소설 속 살인마의 엽기적인 방식은 피그말리온보다는 프랑켄슈타인에 가깝습니다. 피그말리온의 모티프가 메인에 배치된 건 살인마가 미치광이 과학자보다 천재 예술가의 스테레오타입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밖에 인공 피조물에 생명이 깃드는―또는 인물이 그렇다고 느끼는― 순간의 경외감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을 테고요.
이야기 속에서 ‘피그말리온 살인사건’이라는 명명은 아마도 언론이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붙인 헤드라인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짐작하는 게 자연스럽겠죠. 그만큼 이름이 주는 임팩트가 강렬하고 함축적입니다. 사건이나 서사의 프레임을 짜는 데 있어서 이름은 정말 중요하잖아요. ‘프랑켄슈타인 살인사건’이라고 했다면 뉘앙스가 많이 달랐을 거고 아무래도 좀 밋밋해졌겠죠.
10년 전,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청연시에서는 아주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신체 부위가 사라진 20대 여성의 시체 4구가 약 한 달 간격으로 발견된 거예요. 사라진 부위는 순서대로 두 다리, 두 팔, 몸통, 머리였는데 마지막 시체가 발견된 시점으로부터 세 달이 지난 후 더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집니다. 사라진 신체 부위가 하나로 꿰매어진 채 청연시 하늘공원에서 발견된 거죠. 북부경찰서의 에이스 ‘이강우’가 이끄는 특별수사팀이 고군분투해보지만 더 이상의 살인은 일어나지 않고 사안은 그렇게 미제로 남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들 뇌리에 ‘피그말리온 살인사건’으로 각인된 사건의 전말입니다.
그로부터 10년간, 이강우는 승진도 마다한 채 북부경찰서 강력1팀에 남아 범인이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동일한 수법으로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죠. 피그말리온 살인사건을 수사한 경험이 있는 이강우와 ‘최현식’이 곧장 투입되고, 여기에 후배 ‘정동만’과 ‘김시우’까지 한 팀이 되어 수사를 진행합니다. 네 명의 조합이긴 해도 처음에는 거의 강우의 원맨팀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강우는 사건해결률이 99%에 달할 정도로 유능한 형사고, 게다가 이 사건에 대한 강우의 집념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거든요. 하지만 미스터리의 플롯이 한 사람에게만 지나치게 의존해선 곤란하죠. 범인에 대한 강우의 무리한 집착은 되려 그를 수사팀에서 중간에 밀려나게 만들고, 그때부터 수사는 현식, 동만, 시우 세 인물의 협력을 토대로 굴러갑니다. 무게중심이 바뀌기 전과 바뀐 후 수사팀의 색깔은 확연히 대비되고, 이건 이 작품에서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수사팀의 채널이 둘로 나뉨에 따라 자연히 플롯도 세분화되고, 그러면서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중반부 서사의 긴장감을 다시금 팽팽히 잡아당기는 거죠. 종종 쓰이는 전략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에선 트릭이 사용되는 타이밍까지 완벽했던 것 같아요.
주인공이 다수의 용의자 사이에서 단서를 수집하고 범인을 추리하는 고전적 퍼즐 미스터리에서는 애초에 조각나 있던 플롯을 조립하는 게 주요한 형식의 일부로 쓰입니다. 하지만 「피그말리온 살인사건」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용의자로 초점화되는 인물은 단 한 명이고, 그마저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서술자의 관점으로 완벽하게 노출되죠. 그러니까 흔히 ‘후더닛’ 장르에서 작가와 독자가 치밀하게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의 서스펜스는 적어도 이 작품에선 주 무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플롯을 의도적으로 가르는 트릭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걸 적절한 타이밍에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삽입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전 이 작품이 그걸 거의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독자는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에 기반한 미스터리의 서사를 그대로 흡수하며 몰입할 수 있죠.
서술의 초점은 주로 김시우, 이강우, ‘권주원’에 번갈아 맞추어지며 균형을 이룹니다. 서스펜스는 세 인물을 경유하면서 나선형으로 서서히 고조되는데, 어느덧 절정의 순간에 이르면 모두가 폭우 속에서 한 지점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고 있죠. 다만 아쉬운 건 모든 인물이 절체절명의 사건 지점으로 치닫는 바로 그 순간에 삽입된 플래시백이 지나치게 긴 호흡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플래시백은 살인범의 신화적 전사前史를 다루고 있고 이게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라는 것도 충분히 설득이 되는데, 그래도 너무 오래 머문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전 이 플래시백보다는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뒤늦게 분열된 자아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피어오르는 긴장감이 더 인상 깊었거든요. 그 얘기가 중반 이후 하나의 독립된 플롯으로 발전해나갔다면 몰입도가 좀 더 높아졌을 것 같아요.
끝으로 테마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해보면, 이 작품의 핵심 테마는 기괴하게 편집된 사랑과 집념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요. 살인마는 신화 속 피그말리온처럼 완전무결한 사랑의 체험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순결함에 대한 집착은 곧잘 폭력을 동반하죠. 이 이야기는 그 폭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결과물입니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요소를 남김없이 소거하려는 노력이 결국 살인 행위로 귀결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살인 행위는 또다시, 이데아의 형태로 존재하는 미를 이 땅에 불러오는 예술가의 사명으로 정당화됩니다. 위험한 공식이죠. 때문에 아무리 픽션이라도 이런 소재를 다룰 때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동원 가능한 수단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결말의 반전은 작가가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하고 있는지를 암시하며 여운을 남기죠. 여러모로 좋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