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물을 한번 봐볼까 하고 찾다가 이상한 제목이 눈에 띄어 열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전생물, 그 중에서도 책 빙의물이다. 그래서 초반 전개는 뻔하게 흘러간다. 신이라는 애가 나오고, 너는 이 세계에 왔네, 이 세계는 어떤 세계네, 너는 무슨 임무가 주어졌네. 따지고보면 굉장히 여러 중요한 소리들을 한다만, 분량은 엄청 짧아서 마치 번갯불에 콩이라도 구워먹으려는 모양세다.
이건 보통의 소설이라면 분명한 단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생물이라는 게 대게 비슷한 시작을 보이는데다, 이제는 지겨움을 느낄만큼 흔하고 자주 우려진 장르이다보니, 나름 여러 전생물을 보았던 사람으로서는 반대로 장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전생물 특유의 ‘또냐?’하는 마뜩잖은 부분을 느낄새 없이 지나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대게의 전생물이 취하는 이고깽 판타지나 로맨스가 아니라 추리 소설을 대상으로 한 것은 좀 독특했다. 추리물이 전생물의 대상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장르 특성상 범인을 알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결말까지 다 보고 왔다는데야.
그래서 처음 신이 언급했던 ‘변경’으로 마치 리부트 한 것처럼 다른 범인과 전개가 이어지게 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로 볼 수 있게 한 건 좋았는데, 덕분에 빙의물은 물론 추리물의 요소도 모두 살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둘은 서로 시너지가 꽤 좋다. 원작과 달라져 유효한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정보는 추리물의 주요 요소인 의심을 더욱 부추기고, 이렇게 원작과 비교하며 진행되는 것은 그냥 추리물이었으면 그저 그랬을만한 것도 더 흥미롭게 만든다. 리부트 빙의물이라는 것이 꽤 좋은 설정이었다는 얘기다.
두 장르의 장점도 꽤 잘 살렸다. 여전히 남아있는 원작의 정보를 활용한다거나 원작 이벤트가 다른 상황이나 인물들을 통해 일어난다거나 하는 등 책빙의물만의 정석적인 재미도 있고, 새롭게 바뀐 상황을 꽤 그럴듯한 논리로 정리하면서 추리물의 기본도 보여준다. 군데군데에선 각 장르의 전형적인 클리셰들을 대놓고 사용하기도 했는데, 조합장르이기에 그것들도 유쾌하게 다가온다.
만약 그냥 빙의물이었거나 또는 (소설에서 말하는 원작같은) 일반적인 추리물이었다면 이만큼 볼만하진 않지 않았을까.